Add your feed to SetSticker.com! Promote your sites and attract more customers. It costs only 100 EUROS per YEAR.
Pleasant surprises on every page! Discover new articles, displayed randomly throughout the site. Interesting content, always a click away
굿바이 쇼핑 – 소비자로 살 것인가, 시민으로 살 것인가. 29 Dec 2022, 8:52 am
여행 두 번의 여파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지경이 되어 나름대로 결심을 했다. 내 지출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책 구매, 배달 음식, 커피숍에서 사 먹는 음료 세 가지에 대한 지출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그 고민과 동시에 최근 알라딘에서 현대문학 단편선 전자책 세트를 세일하는 것에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단편을 좋아해서 눈독을 들이고 있던 목록이 상상 이상의 저렴한 가격에 나왔으니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할 수밖에. 그래서 1년간 필수품 외에 쇼핑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폴이 마지막으로 코끼리 정원 장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을 결제하듯, 나 역시 큰 맘 먹고 현대문학 단편선 전자책 세트를 결제했다.
그런데 비염 약에 취해 누워 있다 일어나 휴대전화를 보다가 보름쯤 줄 전자책 할인 쿠폰을 이용해 이 세트를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글을 보고는 괜찮다고 생각한 내 구매가 후회되기 시작했다. 세일에 혹해 관심도 없던 것을 산 것도 아니고, 눈독을 들여오던 것이 저렴한 가격에 풀린 것을 보고 나름대로 포인트까지 꼼꼼히 챙겨서 구매해 놓고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정보에 속상해 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이 날 도서관에 반납한 ‘굿바이 쇼핑’ 저자가 쇼핑에 환멸을 느끼고 쇼핑과 ‘굿바이’를 하기로 한 심정이 이해가 됐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제는 물건을 제값주고 사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조금만 알아보면 같은 물건을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넘쳐나고 그렇게 본래 가격보다 월등히 저렴해(보이는) 구매를 하면 잠시나마 ‘개이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본래 할인이니 쿠폰이니 하는 것은 아무리 잘 챙기려 해도 나보다 더 잘 챙기는 꼼꼼한 이들이 나오는 법이고, 시기에 따라 최선의 선택이 최선이 아니게 되는 경우도 많으니 만족스런 소비가 후회로 변하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세일에 혹해 구매한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세상에 좋은 물건은 넘쳐나니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족하며 살 것 같지만 거기에는 일종의 정신승리가 늘 따라다닌다. 신제품을 먼저 사면 곧 세일을 시작하니 먼저 산 사람들은 먼저 샀음에 만족해야 한다. 세일하는 품목을 사면 곧 더 좋은 물건이 비슷한 가격에 나타나니 그나마 싸게 샀음에 만족해야 한다. 나 역시 ‘대여도 아닌 것이 그 가격이면 이미 충분히 저렴한 가격이야’하며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 확실히 깨달았다. 소비자로 살면 영원히 만족이 없다는 것을.
돈만 있으면 누릴 수 있는 게 많다. 하지만 소비로 만족을 얻으려면 대체 얼마나 많이 벌어야 할까? 프리랜서로 살면서 돈을 많이 번다는 건 무지하게 바쁘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시간이 없고, 아파도 제대로 쉴 시간이 없다. 그게 정상인가?
쇼핑을 끊은 1년 동안 폴과 나는 시민으로의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얻었다. 게다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필요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가게와 식당으로부터 스스로를 추방시킨 우리들이 머물 곳이라곤 오래된 공공장소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놀랍고도 풍성한 여러 가지 것들을 보았으며, 공공자산들이 심각하리만치 형편없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도서관, 학교, 다리는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저자인 주디스의 노 쇼핑 프로젝트 기간 동안 미국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되던 선거) 저자가 소비자에서 시민으로의 전환을 생각한 배경에는 그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나 역시 내 삶과 정치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뒤라 이 부분이 가슴에 박혔다. 개인이 소비자로서 살지 않으려면 공공부문이 회복되어야 했던 것이다. 저자 역시 소비자로 사는 동안엔 미처 깨닫지 못했고 나 역시 정치와 삶의 관계에 무지했던 과거에는 눈치 채지 못했던 사실이다.
민주주의 참여라는 전동장치가 삐걱거리다 멈추는데, 누구도 그것을 고치려고 나서거나 고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세금감면의 열병이 보수주의 재정정책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징표다. 미국의 예산 파산과 망가진 기반시설은 공공선의 약속이 깨졌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공공선은 만인의 이익을 위한 제도나 물건이 개인의 사적인 이해관계에 우선하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일용품을 팔아서 벌어들이는 돈의 가치에 우선해야 한다.
공공부문의 보수가 시급한 상황에서 의료보험이나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즐거움과 생계, 지역사회를 추구하려면 이제 개인 소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공공선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게 돼버린다. 그리고 돈벌이와 관계없는 성취를 좇는 폴과 나 같은 사람은 월마트를 향해 말을 타고 돌진하는 돈키호테나 다름없다.
시민의식은 이러한 그림 전부를 바꿔놓는다. 이것은 환경 파괴와 노동착취, 공유재산의 민영화, 욕구와 만족의 상품화를 거부하는 문화와 경제를 위한 정책과 운영을 요구한다는 의미다.
이번에 발표된 부동산 대책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과 무관하지만 가까운 사람 중에는 이 대책으로 직격탄을 맞은 사람도 있다. (내가 알기로 그는 강남 4구에만 부동산이 여럿 있다.) 나는 ‘어차피 증세 없는 복지는 헛소리이며, 복지 국가로 가길 바란다면 증세는 트렌드이니 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도 먼저 맞는 셈 치고 감내하라’고 했다. 그는 내가 같은 입장이 되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을 거라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나는 내가 설령 소득세를 천만 원쯤 낸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저자의 노 쇼핑 실험은 극단적이고, 때로는 답답하기까지 하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 혹은 단순한 삶에 비교하면 이 책은 궁상맞고 찌질하다. 그래도 나는 ‘심플’을 ‘가난’으로 옮긴 이 책의 해석이 마음에 든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럭셔리 소비를 조장하는 것보다야 훨씬 현실적이고 건설적이다. 일지인 만큼 정신없고 산만해서 읽기 좋게 쓰인 책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과 어우러져 좋은 시기에 잘 읽은 책이 됐다. 이어서 ‘완벽한 가격 CHEAP’을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이래서 내 머리맡에 책이 자꾸 쌓인다;;;)
(2017년 8월 4일에 감상문 써둔 파일을 컴퓨터에서 찾아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함)
[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9장: 스무 살 -1-) 11 Feb 2022, 9:01 pm
Transformative Works Statement:
I hereby give permission for anyone to translate any of my fanfiction works into other languages, provided they give me credit and provide a link back to my profile or the original work. Thank you for the interest; I’m always honoured when people ask to translate my work.
* 이 소설은 스팍과 커크가 공수교대를 합니다. 리버스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번역은 별로 없고 번역 설명(언어덕질)이 훨씬 깁니다…
9장: 스무 살
짐을 싸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팍의 아파트는 처음 세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깨끗했고, 우주에서 얼마나 있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계약 연장도 하지 않았다. 스팍은 지구에 남아 있는 시간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냈다.
스팍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짐을 본 것은 관측실 유리 너머를 통해서였다. 짐은 고바야시 마루 시험장에 사과를 챙겨 들어왔고 불만을 드러내는 맥코이만큼이나 불량한 태도로 시뮬레이션에 임했다. 도중에 관측실 내 모든 컴퓨터가 충돌을 일으켰고 시뮬레이터의 조명이 깜박이며 꺼졌다. 스팍과 팀원들이 시뮬레이션을 온라인 상태로 복구하자 짐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차분하게 전송기로 인질들을 승선시키고 적선에 발포했다. 자세나 목소리로 보아 컴퓨터 간섭을 잘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프로그램을 해킹한 것이다.
스팍은 짐에게 따지고 싶었다. 살짝 짜증이 스쳤다. 스팍은 짐이 속임수나 쓰도록 키우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여러 의미에서 스팍이 진정으로 짐을 키운 건 아니었다. 스팍은 인내심을 발휘해 맥코이가 짐을 끌고 가도록 내버려 두고는 두 사람이 아직 밖에 남아 있는 걸 눈치 채고 팀원들이 떠난 뒤에도 한참이나 관측실에 머물렀다. 어느새 스팍은 목소리를 들으려 문에 기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는 동안은 떠날 수가 없었으니까.
사실 스팍은 짐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호에서는 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그리울 터였다.
스팍은 이미 짐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스팍은 매일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벌칸이라는 종족에 어울리지 않게 멍하니 돌아다녔다. 스팍의 아버지도 기뻐할 성싶지 않았다. 어머니와 통신을 했지만 그런 상황을 말씀드리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문제였다. 게다가 어머니의 조언도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결정을 내린 건 스팍이었고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스팍은 파이크 제독과 여러 위원회 회의에 참여해 평소라면 관심사였을 임무 범위를 파악했다. 당장 스팍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400명 이상이 오르내리는 선원 기록뿐이었다.
스팍도 가끔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생각은 늘 스팍을 조금 불편하게 했고 어차피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스팍은 경력에만 집중할 계획이었다. 경력에만. 스팍은 미리 부친 짐을 뺀 나머지를 담은 가방 하나를 들쳐 메고 최종 브리핑을 들으러 본부로 향했다.
스팍은 로비에서 파이크 제독을 만나 걸음을 맞춰 걸으며 제독이 만나자마자 꺼낸 대화에 몰입했다. 가방을 던져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후회는 벌칸인이 느낄 감정이 아니었다. 생산적이지도 않고 쓸데도 없었다. 하지만 후회란 감정은 마치 불처럼 스팍을 사로잡고 마음을 빼앗았다.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어떻게 처신해야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이런 식은 아니었다.
콘솔을 통해 짐을 볼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다를 터였다. 그런 것을 원한 게 아니었다. 스팍은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랐다. 스팍은 짐에게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다. 맥코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스팍의 아파트에 들이닥친다고 해도 스팍은 없을 예정이었다. 엔터프라이즈호에 오르면 통신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스팍은 벌칸인의 수치였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파이크 제독이 스팍을 돌아보며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설레나?”
스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릎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서 말조심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었다.
결국 스팍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스팍커크 팬픽 번역도 번역이지만, 모처럼 번역 관련 이야기도 덧붙여 본다. 사실 내 블로그 오시는 분들이 팬픽을 영어로 못 읽어서 오시는 건 아닐 것 같고, 이런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 오시진 않을까. 나도 오랜만이라 신이 나서 얘 분량이 더 많아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There’s a slight spike of annoyance; Spock didn’t raise him to cheat.
살짝 짜증이 스쳤다. 스팍은 짐이 속임수나 쓰도록 키우지 않았으니까.
‘않았으니까’라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세미콜론(;)이다. 영영 사전을 찾아봤더니 ‘A semicolon is the punctuation mark ; which is used in writing to separate different parts of a sentence or list or to indicate a pause.’ (Collins Dictionary) 라고만 되어 있을 뿐더러 이 설명문 내에서 세미콜론이 쓰이고 있다. 야, 사전이 이래도 되냐. 그래서 학술정보를 검색했더니 마침 한국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 영어에서는 흔히 쓰여서 한국어 화자들을 곤란하게 하는 문장부호 세 개인 콜론(:), 세미콜론(;), 대시(―)를 다룬 논문을 발견했다. 총 34페이지인데 다 읽기 귀찮은 경우 4페이지만 봐도 된다. 하지만 이 세 문장부호를 이해하기에는 매우 도움이 되는 논문이다. 남의 나라 말 문장부호 이해하자고 논문까지 볼 필요는 없지만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잖아요? 그리고 진짜 이 논문 괜찮아요. KCI 등재 논문 아니랄까봐 가려운 곳을 싹싹 긁어주는 논문입니다.
2.
Spock holds himself back and lets McCoy tear Jim apart, and he stays in the room long after his team members, aware that McCoy and Jim are lingering outside.
스팍은 인내심을 발휘해 맥코이가 짐을 끌고 가도록 내버려 두고는 두 사람이 아직 밖에 남아 있는 걸 눈치 채고 팀원들이 떠난 뒤에도 한참이나 관측실에 머물렀다.
예전에는 문장이 길면 중간에 뚝뚝 끊어서 옮기기도 했는데, 이제는 문장이 길면 긴 대로 그대로 옮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번역의 탄생》(이희재/교양인)에는 ‘한국어 어미로 간결하게 바꿀 수 있는 영어 품사는 뭐니뭐니해도 접속사’라는 말이 나온다. 특히 In Time은 인용한 예문처럼 접속사를 한국어 어미로 바꾸는 연습을 하기 좋은 문장이 많이 나온다. 나도 이번엔 이렇게 옮겼지만 다음엔 또 다른 식으로 옮길지도 모름.
3.
At one point, he leans against the door to listen; he can’t go while they’re still there.
And he misses Jim’s voice.
어느새 스팍은 목소리를 들으려 문에 기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는 동안은 떠날 수가 없었으니까.
사실 스팍은 짐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번역을 하다 보면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을 옮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자주 볼 일도 없는 어려운 단어들은 사전 찾아서 나오는 뜻을 그대로 쓰면 된다. 이런 단어는 외울 필요도 없고 사전을 찾으면 뜻이 많지도 않다. 그런데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나 표현은 자주 쓰이는 만큼 온갖 미묘한 뉘앙스를 다 담을 수 있어서 사전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and도 그렇다. 내 생각에 문장 앞에 등장하는 and는 우리말로 ‘아니, 근데’와 닮았다. ‘아니’로 문장을 시작하는 ‘아니시에이팅’에 뭔가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없는 것처럼, 문장 앞 and도 그저 말을 시작하겠다는 의미이지 앞 문장과 연결하겠다는 의도는 거의 없다.
어느새 스팍은 목소리를 들으려 문에 기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는 동안은 떠날 수가 없었으니까. 아니, 근데 스팍은 짐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너무 찰떡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만 화자가 스팍이니 아니시에이팅을 할 수 없어서 그 효과를 살려봤다.
4.
And he misses Jim’s voice.
He’ll miss it so much when he’s on the Enterprise.
He misses it already.
사실 스팍은 짐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호에서는 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그리울 터였다.
스팍은 이미 짐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쉽지만 옮기기 어려운 문장들 또 나왔다. 일단 짐의 목소리가 그립다는 걸 세 번이나 말하고 있다. 이건 유지해야 하는 요소이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세 번째 문장에 already가 있는 걸 보고 시제를 약간 만져 봤다.
5.
He sends a communication to his mother, but he doesn’t tell her of the situation; this is his burden.
어머니와 통신을 했지만 그런 상황을 말씀드리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문제였다.
이번엔 세미콜론을 또 다르게 옮겨 봤다. 문장 부호를 간과할 때가 많은데 궁리하기 시작하면 이것만큼 꿀잼 콘텐츠가 없다. 세미콜론이 들어간 문장은 짧은 문장일 리가 없는데도 나는 개인적으로 세미콜론 옮기는 거 좋아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
He’s made his decision; his hands are tied.
결정을 내린 건 스팍이었고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가장 간단한 세미콜론 해석은 쉼표나 마침표로 옮기는 거다. 여기에서는 쉼표로 이해하고 옮겼다.
7.
For now, all he can see are the crew logs—a fluctuating list of over four hundred people that Spock doesn’t know and has no desire to know.
당장 스팍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400명 이상이 오르내리는 선원 기록뿐이었다.
이번엔 줄표(대시) 등장!!! 그런데 세미콜론과 달리 줄표는 한국어의 쉼표로 대체가 가능한 용법이 대부분이라 영 재미가 없다. 한국어 어문 규범의 쉼표 설명을 보면 실제로 줄표로 대체할 수 있는(반대로 말해 줄표를 쉼표로 대체할 수 있는) 예시가 나온다. 영어에서는 쉼표가 워낙 자주 쓰이기 때문에 줄표를 써서 극적인 효과를 내지만, 한국어는 영어만큼 쉼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줄표 대신 쉼표 써도 된다. 그래서 나는 줄표를 거의 안 살리고 없애버리는 편이다. 영어에 쉼표 있다고 쉼표 그대로 살리는 것도 싫어하는데 한국어의 쉼표로 대체 가능한 줄표를 살릴 리가 없잖아.
8.
Sometimes he thinks he should move on. Call someone else. Attempt to form a… relationship.
스팍도 가끔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should에 move, call, attempt가 다 걸리는데 작가가 의도적으로 문장을 짧게 끊어냈으니 나도 똑같이 끊어냈다. 사실 여기서 까다로울 뻔했던 건 말줄임표였다. 영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달라서 말줄임표가 의도하는 효과를 내면서 옮기는 게 어렵거나, 효과커녕 의미만 간신히 살릴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다행히 이 문장은 아니었지만 말줄임표를 보는 순간 덜컥했다. 이런 거 못 살리면 너무 속상하단 말이야.
9.
He’ll focus on career. On career.
스팍은 경력에만 집중할 계획이었다. 경력에만.
흔히 will은 미래 시제를 나타내는 조동사로만 기억하지만 앞으로 어떠한 행동을 하겠다는 계획, 의지, 의도를 나타낸다는 것을 기억하면 훨씬 자연스럽게 옮길 수 있다.
10.
He never told Jim. He never told McCoy.
스팍은 짐에게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다. 맥코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동일한 짧은 문장 두 개가 반복되었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를 고민해 봤다. 만약 He never told Jim neither McCoy였다면 어땠을까? 그 차이가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He never told Jim neither McCoy였다면 ‘스팍은 짐에게도, 맥코이에게도 언질을 주지 않았다’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스팍이 말을 전하지 않은 사람이 짐과 맥코이라는 것 외에는 주목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문장을 두 개로 나누면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더욱 강조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작가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말을 안 하다 못해 심지어 짐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게 아닐까? 그래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짐이 있는 앞 문장에 쏟아내고 맥코이가 나오는 부분을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처리해서 느낌을 살려보았다. 이 번역문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반영된 것이고 얼마든지 다르게 옮길 수 있다.
11.
They’ll just show up at his apartment one day and he won’t be there.
어느 날 두 사람이 스팍의 아파트에 들이닥친다고 해도 스팍은 없을 예정이었다.
and와 will이 주목 포인트. 설명은 이미 앞에서 다 해서 더 할 게 없다. 《번역의 탄생》(이희재/교양인) 10장에 굉장히 잘 설명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책을 봐 주세요. 번역 이론서인데 읽는 재미도 갖추고 있는 정말 좋은 책이에요.
12.
He’s made a terrible mistake.
결국 스팍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내가 과거형으로 옮기고 있긴 하지만 In Time은 서술에 현재형을 사용한다. 그런 글에서 현재 완료가 쓰였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현재 완료의 여러 의미에 주목했다. 영어를 공부하려고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알고 있을 ‘Grammar In Use’에서는 현재 완료가 1) (현재 시점에서)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거나, 2)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사건이거나, 3) 현재까지의 경험을 나타낼 때 쓰이는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셋 다 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완료는 말 그대로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완료된‘ 일들을 설명한다. 그래서 ‘~해 버렸다(이미 끝나서 되돌릴 수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 문장은 ‘스팍이 끔찍한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고 옮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조금 심심하다. 이 문장은 스팍이 엔터프라이즈호 승선을 앞두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모습이 이어지다가 장면이 전환되기 전에 결론처럼 등장한다. 그래서 결국을 넣었고, 결과에 만족한다.
문장마다 설명할 셈이냐. 아니, 근데 오랜만에 하니까 너무 재밌네 ㅠㅠㅠㅠ
그리고 포스팅 오랜만에 하니까 왜 이렇게 힘들어… 워드프레스 편집기 개구려…
대명사!!! 9 Jul 2020, 10:55 pm
이번 주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조금 말랑말랑한 내용이 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So Here We Are를 옮기려고 열었는데 아래의 문장들을 보고 정신이 멍해졌다.
He’d told him that his emotional breakdown the other day was triggered by him, by his feelings for him. They both knew the alcohol had a large hand in it, but to put him in that position, for him to see him that way… for him to make moments like these any more rare for him… it was wrong.
단문 복문을 떠나 일단 마침표 딱 두 번 찍혔는데 he(him, his)가 열한 번이나 나오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himself라도 섞어주든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냥 읽는 거면 대충 넘어가겠는데, 번역할 땐 의미가 모호한 상태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 일단 첫 번째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the other day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봤더니, 스팍이 이런 말을 했다.
“여기에 와서 친구를 사귀었지. 늘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어. 두 세계에 뿌리를 두었지만 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넌, 너 때문에 난… 내 예상을 뛰어넘는 감정을 느끼게 됐어.”
이걸 찾고 나니 첫 번째 문장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He(Spock) had told him(Jim) that his(Spock’s) emotional breakdown the other day was triggered by him(Jim), by his(Spock’s) feelings for him(Jim).
스팍은 며칠 전 짐에게 자신의 감정이 요동친 이유는 짐 때문이라고, 짐을 향한 자신의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장은… 이게 뭐여.
They(Spock and Jim) both knew the alcohol had a large hand in it, but to put him in that position, for him to see him that way… for him to make moments like these any more rare for him… it was wrong.
감정의 동요가 낯선 일이었다가 더 이상 아니게 되려면 인간은 아닐 테니 맨 마지막은 스팍일 것 같은데, 나머지는 정말 알 수가 없다. 복잡한 영어 문장을 해석하는 방법은 때로 수학의 방정식을 푸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단번에 풀리지 않는 복잡한 방정식(함수)은 가능한 값을 일일이 대입해서 풀어볼 때가 있는데, 영어 문장도 잘 모르겠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모르면 돌아가야지.
They both knew the alcohol had a large hand in it, but it was wrong to put him in that position. (둘 다 술이 가장 큰 이유라는 건 알았지만, 그를 그런 입장에 처하게 하는 건 옳지 않았다.)
They both knew the alcohol had a large hand in it, but it was wrong for him to see him that way. (둘 다 술이 가장 큰 이유라는 건 알았지만, 그가 그를 그런 식으로 보는 건 옳지 않았다.)
They both knew the alcohol had a large hand in it, but it was wrong for him to make moments like these any more rare for him. (둘 다 술이 가장 큰 이유라는 건 알았지만, 그에게 이런 순간이 더 이상 낯설어지지 않는다는 건 옳지 않았다.)
셋 다 머리가 아프지만 가장 쉬운 마지막 문장부터 고민해 봤다. 이게 정식으로 출판된 서적에 있는 문장이라면 무조건 내가 잘못 생각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보지만, 온라인에서는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오류가 있는 문장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오류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둘 다 스팍이라면 for him이 두 번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for him의 의미를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한 개의 for him만 남긴 문장을 만들어 옮겨 보았다.
1) They both knew the alcohol had a large hand in it, but it was wrong for him to make moments like these any more rare (x).
둘 다 술이 가장 큰 이유라는 건 알았지만, 이런 순간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만드는 건 그의 잘못이었다.
2) They both knew the alcohol had a large hand in it, but it was wrong (x) to make moments like these any more rare for him.
둘 다 술이 가장 큰 이유라는 건 알았지만, 그에게 이런 순간이 더 이상 낯설어지지 않는 건 잘못된 일이었다.
여기서 이런 순간은 스팍의 감정이 동요하는 순간을 말하는데, 스팍이 자기 감정 동요한다고 짐을 탓할 리가 없으니 첫 번째 문장의 for him은 스팍이다. 막상 이렇게 보니 두 번째 for him은 조금 애매한 것 같다. 짐에게 스팍 자신이 동요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건 옳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일부러 for him을 두 번 썼다면 두 번째 for him은 짐이다.
They both knew the alcohol had a large hand in it, but it was wrong for Spock to make moments like these any more rare for Jim.
둘 다 술이 가장 큰 이유라는 건 알았지만, 짐이 이런 순간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여기는 건 스팍의 잘못이었다.
그럴싸하다.
They(Spock and Jim) both knew the alcohol had a large hand in it, but to put him in that position, for him to see him that way… for Spock to make moments like these any more rare for Jim… it was wrong.
이렇게 두 개의 for him을 해결하고 다시 보니 이 문장은 스팍이 아무리 술을 먹었어도 그렇지 내가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문장처럼 보인다.
They(Spock and Jim) both knew the alcohol had a large hand in it, but to put Jim in that position, for Spock to see Jim that way… for Spock to make moments like these any more rare for Jim… it was wrong.
둘 다 술이 가장 큰 이유라는 건 알았지만, 짐을 그런 입장에 처하게 한 건, 스팍이 짐을 그렇게 보는 건, 짐이 이런 순간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여기게 된 건 스팍의 잘못이었다.
그런데 이 고생을 하고도 이게 맞는지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that 때문에!!!!! that position이 뭔데요? that way가 뭔데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금 앞의 내용 다 까먹어서 더 모르겠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내가 In time을 더 열심히 하는 이유는, So here we are만 옮기면 꼭 이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시 읽다 알았는데, 이 트윗에 캡처된 것도 So Here We Are 번역 후기였다…………
[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8장: 열아홉 살 -2-) 4 Jul 2020, 5:57 pm
Transformative Works Statement:
I hereby give permission for anyone to translate any of my fanfiction works into other languages, provided they give me credit and provide a link back to my profile or the original work. Thank you for the interest; I’m always honoured when people ask to translate my work.
* 이 소설은 스팍과 커크가 공수교대를 합니다. 리버스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파이크 제독은 아직 정비가 진행 중인 엔터프라이즈호로 근처 은하를 가볍게 탐사할 생각이었다. 스팍에게도 몇 번이고 연구 장교로 와 달라고 제안했지만, 스팍은 아직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복도로 나선 둘은 복도가 교차하는 곳까지 이동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정비가 끝날 때까진 시간 여유가 있으니 생각해 보게, 스팍.”
“그러겠습니다, 제독님. 감사합니다.”
제독은 스팍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몸을 돌려 긴 복도쪽으로 향했다. 스팍이 생각해야 할 일은 많았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분명한 승진 기회였다. 그러나 스팍은 여전히 지상 근무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복도를 걷다 문득 고개를 든 스팍은 떼를 지어 이동하는 학생들 속에서 복도 저 편에 선 익숙한 금발머리를 발견했다. 짐은 비상구 옆 한적한 모퉁이에서 누군가와 바짝 붙어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분명 벌칸인이었다. 똑 떨어진 앞머리에 까만 머리카락을 한 남자는 짐과 같은 붉은 생도 제복을 입고 있었다. 분명 짐의 연배일 것이다. 남자가 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짐이 웃었다.
그제야 자신이 걸음을 멈췄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팍은 고개는 똑바로 앞으로 향하고 뒷짐을 진 꼿꼿한 자세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걸었다. 평소와 다른 일은 조금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두 사람을 막 지나치려고 하는데 짐이 몸을 돌려 스팍을 불렀다.
“스팍.”
어쩔 수 없이 다시 멈춰 선 스팍은 몸을 돌려 짧게 대답했다.
“짐.”
스팍은 그저 걷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짐이 고개를 까닥이며 옆의 남자를 가리켰다.
“소개할 사람이 있어서.”
그쯤 되니 스팍도 어쩔 수가 없었다. 스팍이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려 손을 들어올리는 벌칸식 인사를 하자 남자도 똑같이 따라했다.
“이쪽은 내가 말했던 친구. 그리고 이쪽은 내 남자친구 수발.”
큰 돌덩어리라도 삼킨 것처럼 스팍의 안에서 뭔가가 쿵하고 내려앉았다. 표정은 여전히 아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몸 옆으로 내린 손이 바짝 긴장했다. 스팍도 짐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남성인 경우에는 공식적으로 소개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수발은… 수발은 벌칸인이었다.
스팍이 짐에게 해 줄 수 없는 건 수발도 할 수 없었다. 스팍은 자신이 짐을 거절했던 걸 떠올렸다. 그러니까 짐은 다른 사람을 만나야 했다고. 그러니까 언젠가 일어났을 일이라고.
그러나 그게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았다. 그건… 지적인 추론은 아니었다. 새로운 상황이 본질적으로 잘못인 경우는 없었다. 스팍은 할말이 없었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커크 생도가 대위님 칭찬을 굉장히 많이 하더군요.”
“고맙네, 생도.”
그나마 계급은 스팍이 더 높았다. 스팍이 파이크 제독과 함께한다면 소령으로 승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발을 우주로 파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면 안 될 생각이었다. 스팍은 수발의 잘 닦인 신발부터 머리끝까지 훑어보았지만, 그는 어딜 봐도 벌칸인이었기 때문에 겉모습으로는 딱히 지적할 만한 게 없었다. 모든 게 단정했다. 짐의 취향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짐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가려고. 같이 갈래? 둘이서… 벌칸인끼리 하는 대화를 나눌 수도 있잖아.”
짐은 벌칸인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스팍과 몇 년이고 대화를 나눴으니까. 스팍의 대답은 급했다.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리고 스팍은 수발에게 다시 인사하고, 처음보다 더 빨라진 걸음으로 복도를 벗어났다. 그저 짐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 – –
어쩌다 보니 스팍은 영화관에 끌려와 있었다. 실제로 거의 물리적으로 끌려온 셈이었다. 갑자기 스팍의 아파트에 나타난 세 사람은 실제로 스팍을 납치했고, 스팍이 짐에게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맥코이가 스팍을 한쪽으로 끌고 가더니, 자신이 두 사람 사이에 껴서 어색하기 짝이 없는 꼽사리를 해야 한다면, 스팍도 와서 자신의 짝이 되어야 한다고 으르렁거렸다. 짐과 수발은 두 사람 앞에서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고, 맥코이는 스팍과 함께 뒤처져 걷다가 어째서인지 테네브리아 독감에 대해 논쟁을 벌이게 됐다. 맥코이는 스타플릿 의무관 과정을 밟는 모양이었다. 이야기만 들어 봐도 맥코이의 실력은 상당했다.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맥코이는 괜찮은 상대였고, 영화관까지 가는 것도 대체로는 견딜 만했다. 그러나 좌석을 정하자 짐은 수발의 등받이에 팔까지 걸치고 나란히 앉았다. 정상적인 벌칸인인 수발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맥코이는 스팍이 짐 옆에 앉아야 한다고 우겼다.
“저 커플을 보면 내가 속이 뒤집히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 말에 스팍도 비슷한 수준의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저기, 둘이서 팝콘 좀 사올래? 이왕이면 음료수도.”
짐이 몸을 돌려 부탁했다.
“하여간 내 마누라보다 돈이 더 들어가는 놈이라니까.”
맥코이는 투덜대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을 껴안고 있는 짐 옆에 있고 싶지 않았던 스팍도 맥코이의 뒤를 따랐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인지 극장 로비는 어두웠다. 매점 앞은 사람이 많았고, 둘은 줄을 서야만 했다. 창밖은 어두웠다. 짐은 수업이 다 끝난 저녁에서야 시간이 났다. 다들 생도복이 아닌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었고, 검은 바지에 하얀 셔츠, 어두운 색의 재킷을 입은 맥코이도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스팍은 차라리 짐이 맥코이랑 데이트를 했으면 좋았겠다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가 생각을 철회했다. 스팍은 최대한 아무런 억양 없이 말을 꺼냈다.
“짐이 행복해 보여.”
맥코이가 코웃음 쳤다.
“진심이야, 스팍?”
맥코이는 반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반쯤은 안타깝다는 듯 스팍을 쳐다보았다. 누군가 팝콘을 받았는지 줄이 줄어들었다.
“쟤가 누구더러 질투하라고 저러는 게 빤하잖아.”
누구를 말하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스팍은 정말 그런지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괜한 노력이 되는 셈이었다. 다른 사람처럼 짐에게 매력을 느끼고 반해 있는 게 분명할 수발에게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스팍은 대답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맥코이가 자신을 놀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맥코이가 한 말은 거기까지였다. 둘은 줄이 전부 줄어들 때까지 기다렸고, 맥코이는 큰 팝콘과 음료수 두 잔을 사더니 스팍에게 물었다.
“당신은 뭐 원하는 거 없어?”
짐을 원해. 본능적으로 떠오른 대답이었지만 한심한 대답이었다.
“없어.”
스팍은 맥코이와 함께 팝콘과 음료를 들고 극장 안으로 돌아왔고, 맥코이는 복도에 들어선 스팍을 지나쳐 안으로 향했다. 스팍은 또 다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짐이 극장 안에서 수발과 입맞춤을, 아니, 성관계를 하고 있었다. 어둡고, 맨 뒤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구석 자리라 거의 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공공장소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수발이 그렇게 바람직한 벌칸인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맥코이가 다시 돌아와 스팍을 끌고 자리로 돌아와서는 작게 꾸짖었다.
“너희 둘, 떨어져.”
짐이 몸을 떼며 민망한 듯 우물거렸다.
“미안, 고마워.”
짐은 받아든 음료수를 수발과의 사이에 놓인 컵 홀더에 두었다. 팝콘은 맥코이가 들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짐은 상당한 양을 가져다 먹었다.
스팍은 스크린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멍하니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했다. 중간에 맥코이가 몸을 기울여 귀에 대고 소곤댔다.
“그냥 빌어먹을 영화에나 집중해.”
그래서 스팍은… 의사의 말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마지막 20분은 그 말이 도움이 됐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돌아온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 – –
스팍이 파이크 제독과 또 다시 미팅을 한 후 돌아와 보니 컴퓨터에 커크 제독의 통신 기록이 남아 있었다. 아이오와에서 저녁을 먹자고 또 초대하려는 모양이었다. 짐도 불렀겠지만. 주머니 속 개인 통신기가 울리는 소리에 스팍은 보지도 않고 꺼내 받았다.
“네.”
“아, 엄마 초대 받았어?”
짐의 질문에 스팍이 멍하니 대답했다.
“응.”
“그럼 내가 본부로 갈게. 어디서 볼까?”
스팍의 의견을 묻는 게 아니었다. 짐은 당연히 스팍도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누가 봐도 당연히 가야 했다. 제독님을 다시 보면 반가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다시 짐과 함께 그 집에서, 짐이 제독님께 새 남자친구 얘기를 하는 걸 들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건… 스팍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가끔 두 사람이 착각하는 것 같아도, 스팍은 커크 일가가 아니었다.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빠져도 괜찮았다.
“스팍? 듣고 있어?”
“나는… 여기서 할 일이 있어.”
당장 급한 일은 없어도 항상 할 일은 있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못 갈 것 같아.”
어쨌든 현재 스팍을 힘들게 하는 일들을 떠올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짐이 풀죽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 정말 안 돼? 한두 시간도 안 되는 거야? 엄마가 실망할 텐데…”
“나중에 정중하게 사과할게.”
짐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럼 본즈라도 데려가야겠네. 엄마는 분명 세 사람 몫을 준비했을 테니까. 그럼… 그럼 끊을게, 스팍.”
“장수와 번영을, 짐.”
“그거 하지 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기분이 어떤지 알면서. 완전히 헤어지는 것 같단 말이야.”
“미안해.”
짐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 나중에 봐.”
짐이 통신을 끝냈고, 스팍은 작은 아파트에 홀로 남았다.
– – –
클링온이 무기를 발사하자 짐이 소리쳤다.
“본즈, 본즈, 본즈!”
그 목소리에 스팍은 아이오와에서 소파에 앉아 짐과 함께 비디오 게임을 했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모든 페이저가 동작하지 않습니다, 함장님!”
맥코이가 당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시나리오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어뢰를 맞자 가상 함교의 모든 조명이 꺼졌고, 캄캄한 어둠 속에 잠긴 선원들을 비추는 건 천장의 조명 하나뿐이었다. 창 반대편에서 스팍은 짐이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모형 함장 의자에 털썩 앉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짐은 상당히 편안해 보였다.
짐이 선원 역할을 하던 다른 사람들을 남겨두고 슬그머니 문으로 향하자 맥코이가 짐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고바야시 마루 훈련이잖아, 짐. 원래 다들 실패하는 훈련이야.”
이미 옆문을 통해 나와 있었던 스팍이 두 사람을 복도에서 불러 세웠다.
“그 말은 맞아, 짐.”
“당신이 내 말에 동의하니까 정말 이상한데.”
스팍이 조용히 할 말이 있다는 뜻을 전하려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놀랍게도 맥코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짐의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했다.
“나중에 보자, 인마.”
그러고는 손을 흔들며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짐이 여전히 풀이 죽은 모습으로 스팍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짐의 밝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표정을 보는 건 어색했다. 짐이 웅얼거렸다.
“그게… 꼭 그래서 우울한 건 아니야.”
스팍이 눈썹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래?”
“수발이랑 헤어졌거든.”
그러더니 짐이 스팍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고, 스팍은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렇다니 마음이 아프네.”
“마음이 아프다고?”
스팍이 입을 앙다물었다.
“인간들이 위로할 때 하는 표현이잖아.”
사실 오랜만에 만족스럽다고 해야 할 정도였지만,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짐은 입구의 열린 문으로 햇살이 비추고 생도들이 스쳐가는 복도에서 한동안 스팍을 쳐다보았다. 짐은 청회색 임시 제복을 입고 있었고, 스팍은 회색 교관복을 입고 있었다.
짐의 말은 갑작스러웠다.
“나랑 사귀자.”
스팍이 얼굴을 찌푸렸다. 다시 속이 욱신거렸다. 어쩌면 수발과의 소식을 들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게 행복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짐이 고개를 저으며 실망한 듯 한숨을 쉬더니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짐이 사람들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스팍은 짐의 등을 쳐다보았다. 지금쯤이면 스팍에 대한 관심을 끊을 때도 됐는데, 아직 아닌 모양이었다. 짐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시간이 더 있었다고 해도 스팍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 – –
스팍이 합성기에 칩을 집어넣으려는데 콘솔이 울렸다. 칩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방으로 향하니, 짐의 웃는 얼굴 사진이 깜박이고 있었다.
“나 드디어 오늘 저녁에 시간 비어! 나 보고 싶지 않았어?”
둘이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것도 벌써 몇 주 전의 일이었다. 그래서 스팍의 대답도 쉬웠다.
“응.”
짐이 웃었다.
“나도. 본즈랑 같이 술 한 잔 하러 갈 건데, 올래?”
스팍 기준에 술집은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하기 좋은 장소가 아니었지만 기회를 거절하기에는 너무 오랜만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배도 고팠다. 그래서 스팍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잠시 후 그쪽 건물 로비에서 만나. 알았지?”
그리고 화면이 꺼졌다.
스팍이 자세를 바로했다. 두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의 거리를 감안했을 때, 뭘 해 볼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음식을 먹으러 외출하는데 음식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짧은 시간을 다른 식으로 활용해야 했다.
슬쩍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본 스팍은 좀 더 보기 좋은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맥코이 앞에서 짐을 민망하게 할 순 없었다. 스팍은 옷장에서 옷을 고르다 짐이 마지막으로 자고 갔을 때 두고 간 인조 가죽 재킷이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돌려 줘야 할 옷이었다.
그러나 스팍은 지난 번 짐과 함께 쇼핑하러 나갔을 때 짐이 사줬던 하얀 긴소매 버튼 업 셔츠를 꺼냈다. 스팍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디자인이었지만, 짐은 스팍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스팍은 버튼을 목 끝까지 잠그고, 소매도 단정히 말아 내리고 욕실 거울로 한번 모습을 확인한 다음 계단을 내려갔다. 로비에서 소파를 찾아 앉아서 약 7분 정도 기다리니 짐과 맥코이가 스팍은 이해할 수 없는 농담 끝에 킬킬거리며 나타났다. 두 사람이 도착하자마자 스팍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색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짐의 수염은 또 자라서, 금빛 솜털이 부슬부슬할 정도였다. 짐이 눈까지 활짝 접으며 웃었다.
“보기 좋다.”
“고마워.”
“너 시력 검사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맥코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짐이 웃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미 한 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셋은 건물 밖으로 나섰고 스팍은 얼른 짐을 칭찬하지 못한 자신을 내심 꾸짖었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을 터였다. 짐은 항상 멋지니까. 짐도 아마 알 것이다.
셋은 시내에서 작고 사람 많은 술집을 찾았고, 서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많아 이리저리 틈새를 찾아 이동했다. 시끄럽고 조명도 어두운 실내에서 짐은 카운터로 향했고, 셋은 높다란 스툴에 자리를 잡았다. 빠르게 둘러보니 벌칸은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고, 스팍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겨우 자리에 앉았는데, 짐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스팍은 이 자리가 불편했다. 모든 게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맥코이가 익숙한 소리를 하려는지 짐의 빈자리 쪽으로 몸을 기울이기에 스팍도 몸을 기울였다.
맥코이의 표정은 상당히 진지했다.
“관둬.”
스팍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지?”
“알아들었잖아. 알고 지낸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짐은 정말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고, 그만큼 소중해. 쟤가 힘들어하는 건 안 보고 싶어.”
스팍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대답했다.
“나도 그래.”
“그러면 쟤 좀 그만 괴롭혀.”
이런 상황은… 사람 많고, 공기마저 끈적거리는 어두운 열린 공간의 바 스툴에 앉아서 해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상황이었다. 스팍이 더욱 미간을 찌푸렸다.
맥코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쟤가 당신이 없으면 우울해한다는 건 알잖아. 그래, 애가 좀 다른 사람들하고 놀아나기야 하지. 그래도 말이야, 쟤는 그러고 나면 꼭 당신 얘기를 하면서 징징대. 쟤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그리고 당신도 그래. 당장이라도 애를 벽에 밀어붙일 것 같은 표정을 하면서 왜 사귀지는 않는 건지 나는 평생 가도 모르겠어.”
스팍이 대답하려는데 맥코이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당신이 쟤를 돌봤네 뭐네 하는 소리는 하지도 말아. 짐한테 다 들었는데, 당신이 쟤 아빠도 아니고 지금은 빌어먹을 우주 시대잖아, 젠장. 안도리아인이랑 텔러인이 결혼해서 돼지 같은 얼굴에 반은 시퍼런 애도 낳는 세상이라고. 사랑하면 사랑하는 거지. 애야?”
비유라고 할 수도 없는 비유였다. 하지만 스팍은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또 다시 숨을 쉬기 힘들었다. 자신이 없으면 짐이 우울해한다는 말에 죄책감과 황홀함을 동시에 느꼈다. 끔찍한 모순이었다. 이곳에 오지 않아야 했다. 최대한 굳은 표정으로 맥코이를 쳐다봤지만, 모든 껍데기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투명해진 것 같았다.
절망스러웠다.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짐은 아무 것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둘 사이에 앉아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했다. 세 사람은 온갖 주제로 대화를 나눴고, 맥코이는 종종 아무렇지도 않게 스팍을 쳐다보다가도 태양처럼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스팍은 과할 정도로 짐을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었다.
– – –
대단하고 복잡한 절차를 상상했는데 그저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게 다였다.
그러자 파이크 제독이 웃으며 스팍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생각했어. 자네는 훌륭한 일항사가 될 거야.”
“일등 항해사라고 하셨습니까?”
스팍이 되물었다. 그렇게 높은 자리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했는데, 자네의 이력이 제일 좋아. 다른 함선에서 사람을 데려올 수도 있지만, 이미 잘 굴러가는 함선을 방해할 필요는 없잖아? 게다가 자네라면 충분히 신뢰하고 있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제독님.”
자부심, 내지는 성취감을 느꼈다. 유난히 초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모두에게.
이제 됐다.
“다음 달 말이면 엔터프라이즈호도 출항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발령을 내지.”
“감사합니다.”
스팍이 또 다시 인사하자 제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만 나가보라는 뜻을 전했다.
몸을 돌려 유리 사무실을 빠져나온 스팍은 조금 빠르다 싶은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이제 됐다.
돌아가 전부 취소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 남기고 스팍은 계속 걸었다.
– – –
모든 게 클리셰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챕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제 결말에 해당하는 20살과, 에필로그 같은 25세 챕터만 남았다 ㅠㅠㅠㅠㅠ
나도 2014년 11월에 시작한 이걸 2020년까지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8장: 열아홉 살 -1-) 3 Jul 2020, 6:25 pm
Transformative Works Statement:
I hereby give permission for anyone to translate any of my fanfiction works into other languages, provided they give me credit and provide a link back to my profile or the original work. Thank you for the interest; I’m always honoured when people ask to translate my work.
* 이 소설은 스팍과 커크가 공수교대를 합니다. 리버스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스팍의 아파트는 어느덧 익숙해진 공간보다 눈에 띄게 깨끗했다. 스팍은 사용한 물건을 즉시 제자리에 두었기 때문에 어질러질 일이 없었다. 합성기에 플로믹 수프 레시피를 집어넣은 스팍은 아파트 현관 근처의 작은 식탁에 그릇을 놓고 앉아 먹었다. 작은 아파트였다. 현관 옆에는 작은 주방이 있었고, 그 옆에 거실이 있고, 그 너머로 침대와 욕실이 있었다. 스팍은 대부분 사관학교에서 근무를 하거나 침실의 콘솔을 들여다보며 보냈기 때문에 그걸로도 충분했다.
수프는 만족스러웠다. 스팍은 먹는 동안 특별히 어디에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벽은 온통 감청색이었다. 처음 이곳을 계약할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개인 물품은 별로 없었다. 부정확한 설명이지만, 아파트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서늘했고 어울리지 않게 텅 비어 있었다. 매번 너무 고요했다.
스팍은 짐이 그리웠다.
아주 많이.
먹는 동안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두 명분의 음식을 만들려던 본능도 참아야 했다. 스팍은 계속 식탁 너머를, 심하게는 현관문을 돌아보며 함께 할 누군가를 기대했다. 기대할 일이 있는 게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사람과 대화할 기분은 들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를 하고 방구석에 놓인 책상으로 향했다. 스팍은 책상에 앉아 콘솔을 켰다. 파일을 정리하는 시간에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헌신이 개인적인 성장에 득이 되리라 여겼다. 어차피 남는 시간에 할 수 있는 더 생산적인 일도 없었다.
스팍은 눈꺼풀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일했다. 그 뒤에 옷을 벗고 침대에 올라 소등 명령을 내렸다. 처음도 아니었고 누군가 뭐라고 하기 전까지는 마지막도 아니겠지만, 스팍은 더 작은 침대를 샀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침대도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스팍이 텅 비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벌칸 류트는 협탁에 놓인 채 창문 너머의 달빛을 받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스팍이 떠올릴 수 있는 곡이라고는 밝지 않은 곡뿐이었다. 언젠가 다시 벌칸을 방문할 날이 올 것이다.
스팍이 원하는 모든 것은 지구에 있었다.
스팍은 눈을 감고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 – –
둘의 친구 관계가 끝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짐은 이제 스팍에게 볼일이 없는데도 자주 스팍을 불러냈다. 적어도 짐이 처음 적응하는 동안에는 소식을 못 들을 줄 알았는데, 짐은 스팍에게 질문을 쏟아냈고 스팍은 짐이 이사하는 걸 도왔다. 아이오와의 집에는 짐의 물건이 많았고, 그렇지 않아도 원래 스팍보다 물건이 많았기 때문에 기숙사는 빠르게 채워졌다. 짐의 기숙사는 한쪽에 작은 주방이 딸린 좁은 거실과 침대 두 개가 놓인 방이었다. 짐은 스팍이 아닌 룸메이트와 함께할 예정이었다. 스팍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룸메이트와 함께 지낼 것이다. 콘솔이 울렸고, 스팍은 욕실에서 나와 늦지 않게 응답했다. 반대편에서는 짐이 웃고 있었다.
“있잖아, 오늘 밤에 놀러와. 겨우 과제를 다 끝냈거든. 그래도 월요일엔 또 과제가 쏟아질 거야. 와서 내 룸메이트도 만나 봐.”
학기가 시작된 뒤 짐은 쉬지도 않고 열심히 했다.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도 얼마 없었다. 스팍은 그런 기회가 그리웠다. 그래서는 안 될 텐데도 스팍은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웃었다.
“좋아. 언제든 와. 음식은 우리가 준비해 둘게.”
그리고는 먼저 통신을 끊었다.
우리. 스팍이 없는 ‘우리’에 짐이 있다니 이상했다. 짐이 말하는 음식이 뭘까 막연히 궁금해졌다. 아마 감자칩이나 그 정도의 부적절한 무언가겠지.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짐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짐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여야 할지도 모른다. 짐은 괜찮아 보였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스팍이 그렇게… 과보호를 할 일은 아니었다. 스팍도 알고 있었다.
스팍은 빈손으로 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아파트의 문단속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로비로 내려갔다. 사관학교까지는 도로 몇 개만 건너면 되기 때문에, 스팍은 공원을 통과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었다. 짐의 방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밖은 어둑어둑했지만 아직 시간이 있었다. 빨리 자리를 뜰 결심을 했다. 짐은 제대로 쉴 필요가 있었고, 특히 정규 과정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스팍이 짐의 방에 도착해 노크를 했다.
젊지만 스팍보다는 나이가 많은 남자가 별로 웃음기도 없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 붉은 생도 제복을 입고 있는 남자는 갈색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겼고, 볼에는 약간 수염 자국이 있었다. 짐이 아니었다. 남자는 고개만 돌려 돌아보고는 툴툴거렸다.
“짐! 이 사람이 옛날 네 룸메이트야?”
“본즈!”
짐이 남자 뒤에서 서둘러 모습을 보이며 화를 냈다.
“뭐하는 거야. 얼른 안으로 들여야지, 이 바보야!”
“난 몰랐거든?”
이 ‘본즈’라는 사람은 방어적으로 양손을 들어 올리며 대꾸했다.
“강도일지도 모르잖아.”
“기숙사 근처에 강도가 어딨냐?”
짐이 코웃음 치며 남자를 밀어내고 벽의 패널을 눌러 문을 열었다. 짐이 스팍의 손을 잡고 안으로 끌었다. 스팍은 이미 약간 불편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등 뒤의 문은 닫혀 있었다.
“이쪽은 스팍이야.”
짐이 스팍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소개했다.
“우리는… 친구였어. 같이 자랐지.”
“레너드 맥코이입니다.”
다른 남자가 스팍을 대놓고 평가하며 대답했다.
“신경 쓰지 마.”
짐이 맥코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는 얼굴로 스팍을 쳐다보았다.
“얜 항상 불만이 많거든. 너 때문이 아니야. 친해지면 좋은 사람이야. 진짜야.”
맥코이가 짐을 보는 시선은 그렇지 않았지만, 입술에는 작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장난스럽게 노려보는 건지도 모른다. 그걸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맥코이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솔직히 맥코이가 짐과 가까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스팍은 맥코이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무례한 감정이라, 흔히 말하는 식으로 떨쳐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맥코이는 스팍에게 아무 잘못도 한 적이 없고 그저 짐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미움받을 이유가 없었다. 짐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다. 짐이 맥코이에게 설명했다.
“스팍은 아이오와에 있는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같이 살았어. 나중에 너도 놀러와.”
맥코이가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또 트랜스포터를 타라고? 됐거든.”
“에이, 왜 그래. 엄청나게 안전하다고!”
짐이 징징거렸다.
“전혀 안전하지 않아. 내 분자를 분해해서 좁은 통로로 세상 끝까지 쏘는 게 무슨…”
맥코이가 투덜대기 시작했지만, 스팍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이오와는 세상 끝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맥코이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튼, 무슨 소린지 알잖아요. 트랜스포터는 내 취향이 아닙니다.”
스팍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주장했다.
“제가 보장하죠. 연방의 텔레포터는 아주 안전합니다, 맥코이 씨.”
“아무튼 난 싫어요, 스팍 씨. 그리고 녹색 피가 흐르는 연방 사람이 뭐라고 하든 제가 들을 필요는 없잖습니까.”
맥코이가 반박했다. 스팍이 미간을 찌푸렸다. 연방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는 맥코이로서는 너무나도 비이성적인 태도였지만, 싫다는 것을 표현하는 건 이 둘에게 별로 모욕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스팍은 맥코이가 자신의 피 색깔을 안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면서도 그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약간은 혼란스러웠다. 맥코이는 우주 생물학을 공부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짐은 이 불편한 대화가 그저 귀엽다는 듯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하고 싶은 거 있어? 나갈까? 영화 볼까? 카드 할래?”
“술이나 마셔.”
맥코이의 말에 짐은 웃었지만 스팍은 얼굴을 찌푸렸다. 맥코이는 신경 쓰지 않고 스팍을 지나쳐 주방으로 향했다.
“난 버번 마실 건데, 다들 뭐 갖다줘?”
“난 됐어.”
짐의 말에 맥코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짐이 웃으며 설명했다.
“스팍은 술을 안 마시는데 혼자만 멀쩡하게 둘 수 없잖아.”
“나도 실제로는 멀쩡할 거거든. 몇 잔 마셔봤자 네가 눈치도 못 챌걸.”
“알지 왜 몰라. 술만 취하면 화내지 않고 징징대면서 나한테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잖아.”
큰 병을 들고 잔에 술을 따르며 맥코이가 눈을 부라렸다.
“그딴 농담 하지도 마.”
하지만 짐은 스팍을 쳐다보며 말했다.
“쟨 나 사랑해.”
그런 얘기를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유하는 사랑과는 다른 종류의 사랑인 게 분명했다. 짐은 맥코이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둘은 서로를 놀리는 중이었다. 스팍은 짐이 말한 맥코이의 취한 모습도 농담일 거라고 생각했다. 맥코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짐은 스팍의 손을 잡고 소파로 끌며 물었다.
“이제 우리 뭐할까?”
“네 선택에 맡길게.”
스팍은 특별히 선호하는 게 없었다.
맥코이는 침실에서 카드를 가지고 나와 의자를 빼고 앉았고, 셋이서 복잡한 카드 게임을 했는데 단지 ‘무표정’ 덕분에 스팍이 제일 잘한다는 걸 알게 됐다. 몇 판을 해 본 맥코이가 사기니 뭐니 말을 했지만, 짐은 항상 웃어버리며 계속 카드 게임을 했다. 맥코이는 굉장히 투덜대는 성격이었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이러니저러니 해도 맥코이가 짐을 좋아한다는 게 훤히 보였다. 맥코이에게 전부인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좀 더 호감이 생기기도 했다. 짐은 농담도 할 정도였다.
“꼬셔보려고도 했는데 쟤는 여자 것밖에 모른다니까.”
“네가 매력적이긴 하지.”
맥코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지만, 표정은 정반대였다.
“…근데 꿈도 꾸지 마라.”
“흥. 어차피 나도 너 싫거든.”
맥코이가 크게 웃었다. 술 덕분이었다. 맥코이는 다리를 떡 벌린 채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다들 본즈는 뼈만 남기고 벗겨먹으려고 드니까.”
본즈는 자기 농담에 웃음을 터트렸고, 짐은 미친 듯이 웃었다. 스팍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기분이었다. 무엇이 진지한 말인지, 무엇이 농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스팍은 함께 웃을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설령 이해한다고 해도, 아마 웃지 않을 것이다.
게임을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짐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크게 지고 있었고 맥코이는 흥미를 잃은 상태였다. 결국 카드를 치운 뒤 짐이 말했다.
“우리 영화 보자.”
하지만 스팍은 시계를 흘끔 쳐다보고 대답했다.
“너무 늦었어. 저학년 생도니까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유지해야지.”
그 말에 짐이 코웃음 쳤다.
“스팍, 여긴 스타플릿 사관학교야. 아무도 안 잔다고.”
“나도 와이프한테 차이면서 잘 때 더 많이 잤어.”
맥코이가 끼어들며 하는 소리는 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인 것 같았다. 하지만 스팍은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갈 의사를 밝혔다. 짐이 내키지 않은 듯 한숨을 쉬더니 문까지 배웅했다. 작별 인사를 하다가, 스팍은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다. 짐이 다른 장소에서, 너무나 완벽하게 적응해 붉은 생도복을 입고 있는 이 상황을. 잘 맞는 생도복을 입은 짐은 언제나처럼 근사했다. 이제 짐은 혼자서 생활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과 데이트도 하고, 다른 친구도 사귀었다. 이제 짐에게는 다른… ‘일항사’가 있었다.
스팍도 다른 곳에 살고 있긴 했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데이트에도 관심이 없었다. 스팍이 밤공기 속으로 향하려는데 짐이 나직이 말했다.
“빨리 돌아와.”
“공부 열심히 해.”
스팍의 말에 짐이 고개를 끄덕였다. 웃고는 있었지만 조금 억지스럽게 보였다. 짐이 손을 흔들었고 스팍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멀어졌다.
– – –
현관벨이 울리는 소리에 스팍은 벗었던 셔츠를 다시 꿰입었다.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스팍은 천천히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짐이 또 붉은 생도복을 입고, 패드를 손에 든 채 서 있었다.
“안녕.”
“그래, 안녕.”
“미안해, 늦은 시간인 건 아는데 전략 분석 과제 때문에 네 도움 좀 받으려고.”
스팍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전략 분석이면 네가 제일 잘하는 과목이잖아.”
“이젠 아니야.”
짐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젠 생존 전략을 제일 잘해. 어쨌든 이것도 잘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 이미 레포트는 썼는데 그냥 한번 봐 줬으면 해서. 이해하지?”
“난 사관학교의 교원이라 적절하다고 하기는 어렵겠는걸.”
“내 과목 교수님은 아니잖아.”
그 말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짐은 상황을 더 곤란하게 만들었다. 잔뜩 바라는 표정으로 스팍에게 기대 애원했으니까.
“스팍, 부탁이야, 응?”
정말 이상하게도 스팍은 목이 탔다. 얼굴도 조금 홧홧했다.
“알았어.”
그렇게 말한 스팍은 활짝 웃는 짐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쪽으로 비켜섰다. 문이 닫히자 스팍도 몸을 돌려 짐을 따라 주방으로 향했다. 짐은 거실을 그대로 지나쳐 바로 침실로 향하더니 신발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하얀 침구로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 위에서 짐의 생도 제복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스팍의 굳은 표정을 보았는지 짐이 올려다보며 스팍을 안심시켰다.
“한두 시간만 있으면 본즈도 일이 끝나니까 같이 저녁 먹으러 나갈 거야. 본즈한테 여기 있겠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밤새도록 널 괴롭힐 생각 없어.”
스팍은 짐이 괴롭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심 벌칸인으로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자신의 침대 위에 누운 짐을 보는 일은… 힘들었다.
짐은 사심 없이 침대 헤드에 기대 패드를 이곳저곳 클릭했고, 스팍은 그런 짐의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이 충분히 떨어져 앉을 만큼 침대가 넓은 건 아니었지만, 스팍은 티 나지 않게 거리를 두려고 최선을 다했다. 둘의 무릎이 닿았다. 다른 곳도 닿았다면 스팍은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짐의 패드를 보려면 스팍도 몸을 살짝 기울여야 했다.
“내용을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은 비워뒀고, 바꿔야 할 곳에는 밑줄을 쳐 놨어.”
“우리 둘의 입장 상 너한테 답을 알려주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
스팍은 교수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짐이 스팍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라면 객관성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편애를 할 수는 없었다. 편애라니. 짐은 그의 애정이 향하는… 모든 것이었다.
어째서였을까, 스팍은 두 사람이 따로 살며 덜 만나면 둘의 관계가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스팍이 한 주 내내, 심지어 한 달 내내 짐을 안 보고 지내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스팍은 더 추위를 느꼈고, 더욱 공허해졌다. 그러다 짐이 과제가 쌓였다고 징징거리며 연락해 오면, 스팍은 자부심과 표현하지 않았던 그리움을 털어놓을 것이다. 가끔은 최대한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자신이 우주로 떠나야 하진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그런 생각에 스팍은 무너져내렸다.
짐이 조심스레 말했다.
“괜찮아. 그냥 내가 쓴 걸 훑어보는 건 괜찮지? 그냥 네 생각을 말해주는 건 괜찮잖아?”
짐이 패드를 건넸다. 패드를 건네받던 스팍의 손가락이 짐의 손가락 근처에서 움찔거렸다. 짐의 손은 아주 오래 전 스팍이 자주 잡을 때보다 훨씬 자라 있었다. 스팍은 가끔 더 어릴 때의 짐을 모르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짐의 레포트는 논지가 분명했다. 분량은 긴 편이었지만, 사관학교라서 괜찮았다. 스팍이 읽는 동안 짐은 조용히 앉아 있었고, 단 한 번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떴다가 금세 돌아왔다. 짐이 스팍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팔짱을 꼈을 때, 긴장하며 몸을 굳혀야 하는 스팍은 그러지 않았다. 스팍이 짐을 내려다보더니 패드를 내려놓았다.
“짐…”
“보고 싶었어.”
짐이 속삭이며 스팍의 팔을 껴안았다. 자신이 해야 할 말이 뭔지 알면서도 스팍의 혓바닥은 뻣뻣했고, 입술은 딱 붙어서 벌어질 줄 몰랐다. 스팍이 속으로 잠깐이라고 다짐하며 짐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아주 잠깐이라고. 스팍은 그저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보고 싶었어.”
현관벨이 울렸다. 스팍이 화들짝 자세를 바로했다. 패드를 짐에게 건네고 침대에서 내려와, 고개를 저으며 현관을 향해 걸으면서도 곤란한 상황에서 해방된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문이 열리자 맥코이가 들어오며 한 마디 했다.
“황량하게 해 놓고 사는구나, 뾰족 귀.”
짐이 패드를 들고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짐의 시선에 스팍이 대답했다.
“훌륭한 통찰력이 담긴 보고서였어. 교수님도 상당히 인상 깊게 생각하실 거야.”
짐이 활짝 웃었다.
“고마워 스팍.”
짐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 맥코이와 함께 아파트를 나섰다. 맥코이가 스팍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바람에, 이상하게도 맥코이에게 짐을 잘 부탁한다고 말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맥코이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이상하게 들릴 터였다. 게다가 짐은 이제 누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짐 곁에는 항상 누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스팍은 가끔 자신을 돌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그러다 딱 한 번, 스팍이 아팠을 때 아직 청소년이던 짐이 누우라고 하더니 의사가 치료하러 올 때까지 수프를 먹여 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다른 일들도 있었지만 그때의 일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 정도로 거의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누군가가 필요한 건 스팍이었다.
스팍의 곁에 항상 있어준 건 짐이었다. 스팍은 만약 자신이 문을 열고 당장이라도 부른다면, 짐이 달려와 줄 거라고 생각했다.
스팍은 방으로 돌아가 셔츠를 벗고 잘 준비를 했다.
====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In time을 옮길 때는 원문을 아주 있는 그대로 직역하고 있다.
McCoy brings cards out of the bedroom and pulls up a chair, and the three of them play some complicated game that Spock proves to be best at solely due to his ‘straight face.’
맥코이는 침실에서 카드를 가지고 나와 의자를 빼고 앉았고, 셋이서 복잡한 카드 게임을 했는데 단지 ‘무표정’ 덕분에 스팍이 제일 잘한다는 걸 알게 됐다.
보통 이 정도까지 축자역을 하지는 않는데, 이 정도까지 해 보면 나와 다른 호흡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다. 내 생각에는 이쯤에서 끊어야 할 것 같은데 굳이 문장을 이어가고, 이건 붙이는 게 나은 것 같은데 굳이 분리한다. 나한테는 너무 낯선 호흡이지만, 그러니 일부러 더 해 본다. 문체를 닮기 위해 필사를 한다는데, 필사를 해 보진 않았지만 아마 비슷한 효과일 것 같다. 나의 경우 이 픽의 문체가 좋아서 이렇게 하는 건 아니고, 원문이 직역하기 좋은 형태라서 하는 거지만………..
아아, 이제 고지가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 표기에 관해(스페인 한림원) 12 May 2020, 9:25 pm
프랑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코로나19를 여성형 명사로 사용하기로 했다기에 문득 궁금해져서 스페인 한림원(https://www.rae.es)에 가 보니 관련 글이 있어서 오랜만에 옮겨봤다. 어제 트위터에 썼을 때 옮겼으면 좋았겠지만 스페인어 실력이 어디다 내놓을 수준이 아니라서 대충 무슨 뜻인지야 알아도 정제된 문장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운다)
결론: 스페인어에서는 COVID-19를 남성형으로 사용한다.
역시 유럽어. 같은 로망스어 계열이라고 방심할 수 없다.
COVID-19 위기: 코로나 바이러스 표기에 관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국제 위기는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야기했고, 이미 일상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질환과 싸우기 위한 방법과 관습을 바꾸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말(스페인어)도 이런 사회와 팬데믹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팬데믹pandemia, 전염병epidemia, 검역cuarentena, 격리하다confinar, 격리confinamiento, 건강 염려증hipocondría, 무증상asintomático 등의 단어는 이를 반영하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코로나 바이러스coronavirus는 요즘 사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입니다.
물론 위생 위기라는 말 자체도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현재의 예외적 상황은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내지만 대부분 일시적입니다. 잠시 유행하지만 결국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 일상 대화의 일부가 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는 계속해서 기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단어를 만들어 낸 현재의 위기가 이런 용어가 만들어지게 된 사회의 상징을 넘어 스페인어 사전Diccionario de la lengua española에 포함되는 단어로 남을지는 예상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용어는 DLE(스페인어 사전) 최신판에서 찾을 수 없지만, 이에 대한 논의 및 편입이 제안된 상태입니다.
어떻게 표기합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voz)는 하나의 단어로 표기하며 바이러스에 대한 보통 명사나 해당 질병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할 때는 첫 글자를 소문자로 표기합니다.
Los coronavirus pertenecen a la familia Coronaviridae.
코로나 바이러스는 코로나바이러스과이다.
복수형은 무엇입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의 복수형은 los coronavirus로 단수형과 동일합니다.
어디서 유래된 단어입니까?
이 단어는 바이러스의 외형이 태양의 코로나와 닮은 데서 유래되었을 것입니다. 라틴 학술 용어에서 딴 보통 명사로 사용되며 왕립 의학 학술원La Real Academia Nacional de Midicina의 의학 용어 사전Diccionario de términos médicos에 등록된 단어입니다.
COVID-19
세계보건기구는 COVID-19(COronaVIrus + Disease질병 + [20]19)라는 약어를 제안했습니다.
COVID-19라는 약어는 SARS-CoV-2로 인한 질병을 가리키며 코로나바이러스과 및 원인 바이러스의 이름을 사용하는 기타 바이러스성 질병(el zika, el ébola)의 영향을 받아 일반적으로 남성형(el COVID-19)으로 사용합니다. 약어(COronaVIrus Disease)를 만드는 데 사용된 핵심 단어 질병enfermedad(영어 disease)이 여성형이기 때문에 여성형(la COVID-19) 사용이 허용되지만 앞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주로 사용되는 것은 남성형이며 이는 항상 유효합니다.
COVID-19와 covid-19 중 어떤 표기법을 사용합니까?
정식 어휘로 등록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만들어진 약어이므로 모든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합니다. 이 질병이 보통 명사로 전환되어 사전에 포함되는 경우 covid-19처럼 소문자로 표기하게 될 것입니다.
COVID는 어떻게 발음합니까?
음운론적으로 대문자 용어의 악센트를 정하는 기준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실제 표기형과 유사한 단어에서 주로 사용하는 악센트 방식을 적용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kobíd]로 발음합니다.
Musical ‘Don Juan’ – Vivir 10 May 2020, 12:09 am
Aquella mañana me levanté, ya no estabas tú. Sólo una carta escrita.
그날 아침 잠에서 깨어 보니, 이미 당신은 없었어요. 편지 한 장만 남아 있었죠.
Dime por qué te has marchado con él.
왜 그와 함께 떠났는지 말해 줘요.
Sin tu amor es imposible mi vida.
난 당신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걸요.
Amor, dáme una explicación, a nuestra historia de amor.
내 사랑. 내게, 우리 사랑에, 이유를 말해 줘요.
Por qué te vas, amor mío. ¿Por qué acaba, por qué acaba?
왜 떠난 거예요, 내 사랑. 왜 끝난 거죠?
No puedo vivir, no puedo vivir.
난 살 수 없어요.
Moriré sin tu amor y no puedo yo vivir.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난 죽어 버릴 거예요. 살아갈 수 없어요.
No puedo vivir, no puedo vivir.
살아갈 수 없어요.
Moriré sin tu amor contigo vivir.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죽어 버릴 거예요. 당신이 있어야 살아요.
Hoy mi vida no parece nada.
이제 내 삶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En cada sitio yo te veo y te veo aparecer.
어디서나 당신이 보여요. 당신이 나타나요.
De mi mente todas esas noches no se me van.
당신과 함께 보낸 밤은 내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Sentando en ese sofá te recuerdo. Vuelve, vuelve.
그 소파에 앉아 당신을 떠올려요. 제발 돌아와요.
Amor, dáme una explicación, a nuestra historia de amor.
내 사랑. 내게, 우리 사랑에, 이유를 말해 줘요.
Por qué te vas, amor mío. ¿Por qué acaba, por qué acaba?
왜 떠난 거예요, 내 사랑. 왜 끝난 거죠?
No puedo vivir, no puedo vivir.
난 살 수 없어요.
Moriré sin tu amor y no puedo yo vivir.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난 죽어 버릴 거예요. 살아갈 수 없어요.
No puedo vivir, no puedo vivir.
살아갈 수 없어요.
Moriré sin tu amor contigo vivir.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죽어 버릴 거예요. 당신이 있어야 살아요.
Es imposible de vivir, de vivir de esa manera. Vuelve junto a mí.
이런 식으로는 살 수 없어요. 내게 돌아와요.
Te lo pido que vuelvas, vuelve. No puedo vivir.
돌아와 달라고 이렇게 애원할게요. 살 수가 없다고요.
No puedo vivir, no puedo vivir.
살아갈 수 없어요.
Moriré sin tu amor y no puedo yo vivir.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난 죽어 버릴 거예요. 살아갈 수 없어요.
No puedo vivir, no puedo vivir.
살아갈 수 없어요.
Moriré sin tu amor contigo vivir.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죽어 버릴 거예요. 당신이 있어야 살아요.
No puedo vivir, no puedo vivir.
살아갈 수 없어요.
Moriré sin tu amor contigo vivir.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죽어 버릴 거예요. 당신이 있어야 살아요.
No puedo vivir, no puedo vivir.
살아갈 수 없어요.
Moriré sin tu amor contigo vivir.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죽어 버릴 거예요. 당신이 있어야 살아요.
No puedo vivir (Ya no puedo sufrir más)
살아갈 수 없어요 (이 고통을 더는 견딜 수 없어요)
No puedo vivir (Ya no puedo sufrir más)
살아갈 수 없어요 (이 고통을 더는 견딜 수 없어요)
Moriré sin tu amor contigo vivir.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죽어 버릴 거예요. 당신이 있어야 살아요.
No puedo vivir (Ya no puedo sufrir más)
살아갈 수 없어요 (이 고통을 더는 견딜 수 없어요)
No puedo vivir (Ya no puedo sufrir más)
살아갈 수 없어요 (이 고통을 더는 견딜 수 없어요)
Moriré sin tu amor contigo vivir.
당신의 사랑이 없으면 죽어 버릴 거예요. 당신이 있어야 살아요.
= = =
오리지널 캐스트들 오랜만에 보니 좋다.
Amor, dame una explicación a nuestra historia de amor.
다른 건 특별히 어려운 게 없고 여기서 a의 용법만 잘 모르겠는데 To me, to the story of our love, give an explanation. 이렇게 보고 옮김. 서양어는 서양어로 이해하는 게 확실히 편해.
프랑스어도 이 정도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BL 커플의 100문 100답 23 Apr 2020, 1:54 pm
http://blog.livedoor.jp/roomyh/archives/51856485.html
언급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도 없는 스핀오프까지 사 봐야 하나 고민될 정도로 다시 한번 ‘유혹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깨달은 관계로 이거라도 옮겨 두기로 한다. 10개씩 쪼개져 있어서 보기 힘들거든;;
= = =
2006년 11월에 작성했지만 2017년 4월 ‘만월의 밤에 안겨서(한국어 번역본: 제왕은 만월의 밤에 취한다)’에서 처음으로 다치바나 키이츠와 미네 하루카를 만난 분, 반갑네~하며 빙긋 웃을 수 있는 분께(*^_^*)
참고로 만월 시점의 연령 설정은 37~8세 정도입니다. (제 연령 한계선이 40세 전이기 때문에 ^^)
-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세요.
키이츠: 다치바나 키이츠입니다
하루카: 미네 하루카입니다
- 나이는? (연재 종료 직후 설정)
키이츠: 19세
하루카: 20세
* 키이츠 생일 11월 17일, 하루카 생일 4월 4일(인 모양)
- 성별은?
키이츠: 남자
하루카: 당연히 남자
- 당신의 성격은?
키이츠: 지기 싫어한다. 또 잘 끓어오르지도 잘 식지도 않는다? (웃음)
하루카: 성실하지만 분위기를 잘 탄다고 해야 하나
- 상대의 성격은?
키이츠: 긍정적이고 꼼꼼하고 기가 세다. 하지만 사실은 겁도 많고 외로움도 많이 타는 사람
하루카: 여러 가지 의미로 곤란하다
키이츠: 그거 무슨 의미야?
하루카: 그렇게 대답하기 힘든 걸 따지고 든다는 의미!
- 두 사람이 만난 건 언제? 어디서?
키이츠: 작년 가을에 학교 복도에서
하루카: 1995년 11월 17일 마가 낀 금요일에 롯폰기의 풀 바에서
키이츠: 어? 그렇게 보는 거야?
하루카: 그러는 너는(웃음)
- 상대의 첫인상은?
키이츠: 정신없는 녀석
하루카: 잘생겼네(분하지만)
키이츠: 헤~ 그랬구나?♪
하루카: 그런 점이 곤란하다는 거얏!
- 상대의 어떤 점이 좋아?
키이츠: 세심하고 다정한 점
하루카: 사실은 허술한 점(웃음)
- 상대의 어떤 점이 싫어?
키이츠: 아끼는 차를 함부로 다뤄(웃음)
하루카: 쓸데없이 인기가 많아(ㅡ_ㅡ)
키이츠: 풉…
하루카: 역시 이런 거!!
- 너와 상대의 상성은 좋다고 생각해?
키이츠: 타고난 부분은 좋다고 생각해. 알아차리는 데 시간은 걸리지만
하루카: 최악이다 싶을 정도로 좋은 거 아닌가
- 상대를 어떻게 불러?
키이츠: 하루카
하루카: 키이츠
- 불러줬으면 하는 호칭은?
키이츠: 지금 이대로가 좋아
하루카: 이대로가 좋아
- 상대를 동물에 비교한다면?
키이츠: 이리오모테산고양이. 여러 가지 의미로 순수한데다 보호종이 아닐까 싶어서
하루카: 악마적 인간(이렇게 약삭빠른 동물이 또 있을 리 없어!)
- 상대에게 선물을 한다면 뭘 줄 거야?
키이츠: 사랑?(웃음)
하루카: 건강(을 관리하려는 노력)
- 선물을 받는다면 뭐가 좋아?
키이츠: 사랑
하루카: 이 이상의 선물은 됐어 (^_^;)
- 상대에게 불만은 있어? 있다면 뭐야?
키이츠: 좀 더 응석을 받아 주면 좋겠는데~
하루카: 이런 점. 제멋대로 구는 것도 적당해야지.
- 버릇은 뭐야?
키이츠: 간살스러운 웃음?
하루카: 술버릇 말하는 건가?
- 상대의 버릇은?
키이츠: 곤란한 상황이면 웃으면서 넘겨
하루카: 경계하고 있을 때일수록 들러붙어
- 상대가 행동(버릇 같은 것)을 해서 싫은 것은?
키이츠: 나 외의 타인에게 너무 친절해. 자각도 없이 사람을 너무 유혹해
하루카: 방을 어지럽혀
- 상대가 화내는 당신의 행동(버릇 같은 것)은?
키이츠: 밖에서 스킨십
하루카: 아끼는 차에 짐을 너무 많이 싣는 것 (^_^;)
- 둘은 얼마만큼의 관계?
키이츠: 갈 데까지 간 관계
하루카: 이 이상은 없을 관계
- 둘의 첫 데이트는 어디?
키이츠: 일단 오다이바…가 되려나?
하루카: 오다이바에서 영화본 거 아닌가?
- 그때 둘의 분위기는?
키이츠: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하루카: 나만 잔뜩 두근두근했지
- 그때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어?
키이츠: 이미 진도는 다 나간 상태였으니. 그래도 일단 풀코스
하루카: 키이츠의 얼굴에 원숭이 인형이 떨어지기 전까지(웃음)
- 자주 가는 데이트 장소는?
키이츠: 뉴욕 시내를 한바퀴
하루카: 여기라고 할 만한 곳은 별로 없는 것 같아. 키이츠가 차를 좋아해서 드라이브할 때가 많으려나?
- 상대의 생일. 어떻게 연출할래?
키이츠: 둘이서만 지내는 것도 좋지만, 그때 정도는 사람을 불러도 좋지 않을까? 일단 반나절이라도 휴가를 낼 수 있어야겠지만…
하루카: 아키 어머님을 뵈러 갈래. 올해 키이츠는 몇 살이에요, 하고 보고할 겸.
- 고백은 누가 했어?
키이츠: 내가
하루카: 키이츠가
- 상대가 얼마나 좋아?
키이츠: 표현 못할 정도로
하루카: 인생을 걸 정도로
- 그럼 사랑해?
키이츠: 사랑해
하루카: —-…음
- 들었을 때 약해지는 상대의 말은?
키이츠: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널 위해서야. 이런 말을 들으면 만세를 부르려나.
하루카: 너밖에 없어… 여러 상황에서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너무했나?
- 상대가 바람을 피운 것 같아! 어쩔 거야?
키이츠: 그럴 리 없어
하루카: 거꾸로 매달아 버릴 거야
- 바람피운 건 용서해?
키이츠: 당해본 적 없어서 상상도 못하겠네
하루카: 용서하겠어?
- 상대가 데이트에 1시간이나 늦었어! 어떡할 거야?
키이츠: 연락도 없이 늦었다면 실종자 수색 부탁해야지. 연락하고 늦으면 귀여운 벌을 줄 거야 v
하루카: 연락도 없이 늦었다면 실종자 수색. 연락하고 늦으면 어쩔 수 없잖아?
- 상대의 신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어디?
키이츠: 솔직한 눈동자
하루카: 주, 주로 쓰는 손…이려나.
- 상대의 섹시한 행동은 뭐야?
키이츠: 문득 눈을 가늘게 뜨는 모습.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벌리는 모습. 자각 없는 행동이 섹시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루카: 팔을 괴고 노트북을 쳐다볼 때. 지금은 끊으라고 했지만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 때. 양주잔에 입술을 댈 때. 자면서 몸을 뒤척일 때. 넥타이를 풀 때… 읏, 분하지만 키이츠는 뭘 해도 태가 나고 섹시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걸 페로몬을 흘리고 다닌다고 해야 하나?
- 둘이 있을 때 설레는 순간은 언제?
키이츠: 하루카가 잠결에 몸을 부빌 때
하루카: 키이츠의 눈이 섹스 모드가 되었을 때
- 상대한테 거짓말은 해? 거짓말은 잘해?
키이츠: 한다면 완벽하게
하루카: 얼굴에 다 드러나서 무리
- 뭘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해?
키이츠: 역시 하루카랑 늘어질 때가 가장 좋으려나.
하루카: 저녁 한 잔♪
- 싸운 적은 있어?
키이츠: 있어
하루카: 엄청 많지
- 싸우면 어떻게 싸워?
키이츠: 역시 말싸움. 때에 따라 얻어맞기도 해
하루카: 기본적으로 말싸움. 하지만 말로 안 될 땐 때려.
- 화해는 어떻게 해?
키이츠: 하루카가 좋아하는 재료랑 술을 직접 사(웃음)
하루카: 술과 음식으로 대충…(웃음)
- 다시 태어나도 연인이 되고 싶어?
키이츠: 당연하지
하루카: …음
-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느낄 때는 언제?
키이츠: 아침에 깨워줄 때
하루카: 곤란한데…하고 생각하면 꼭 나타날 때
- ‘설마 사랑받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될 땐 언제?
키이츠: 취해서 시비걸 때(웃음)
하루카: 사귄 뒤부터는 없…네요
- 당신의 사랑 표현 방법은 어떤 식?
키이츠: 스킨십
하루카: 챙겨주기
- 혹시 죽는다면 상대보다 먼저가 좋아? 나중이 좋아?
키이츠: 1초라도 먼저
하루카: 1초라도 나중에
- 둘 사이에 숨기는 건 있어?
키이츠: 일부러 숨기는 건 없어
하루카: 특별히 없다고 생각해
- 당신의 콤플렉스는 무엇?
키이츠: 하루카한테 너무 심하게 젠체한다는 얘기를 듣긴 하는데…
하루카: 남자치고는 키가 작은 것…이려나. 실제로 이쿠미나 아오야마보다 작으니까(郁実ちゃんや蒼山くん. 발음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성별도 모름)
- 주변 사람들에게 둘 사이는 공인? 극비?
키이츠: 공인
하루카: 숨기질 못해(バレバレ)
- 둘의 사랑은 영원하다고 생각해?
키이츠: 당연하지
하루카: 죽어도 끊지 못할 악연이라고 생각해
- 너는 공? 수?
키이츠: 공
하루카: …공은 아니야
- 왜 그렇게 정한 거야?
키이츠: 내가 공이니까
하루카: 처음 했을 때 당해서?
- 그 상태로 만족해?
키이츠: 만족하지
하루카: 만족해도 되나 싶지만 공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니 어쩔 수 없잖아!
- 첫 섹스는 어디서?
키이츠: 호텔의 내 방
하루카: 만델린 도쿄의 스위트룸
- 그때의 소감을….
키이츠: 재밌었으려나
하루카: 사상 최악이었어
- 그때 상대의 상태는?
키이츠: 비참해하는 것 같았어 (^_^;)
하루카: 즐거워하는 것 같았어(분노)
- 첫날밤을 보내고 맞은 아침에 처음 한 말은?
키이츠: 아파!…라고 소리친 것 같은데…
하루카: 벌써 일어나게?가 아니었을까
- 섹스는 일주일에 몇 번 해?
키이츠: 할 수 있는 만큼?
하루카: 따로 정해둔 건 아니지만 반 이상은 덮쳐지는 느낌이야…
- 이상은 일주일에 몇 번?
키이츠: 소프트하게 4번, 하드하게 3번(웃음)
하루카: 그런 이상은 생각해 본 적 없어서 모르겠어…
- 어떤 섹스야?
키이츠: 비교적 평범하지 않나?
하루카: 키이츠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친 편이라고 생각해
- 자신이 가장 느끼는 곳은 어디?
키이츠: 마음v
하루카: 어디든 힘들어
- 상대가 가장 느끼는 곳은 어디야?
키이츠: 하루카는 민감해서 어디든 느끼더라고. 하지만 굳이 꼽자면 역시 몸 안쪽이랄까
하루카: 모, 몰라… 역시 남자니까 거기 아니야?
- 섹스할 때 상대를 한 마디로 말하면?
키이츠: 귀여워
하루카: 변태
- 딱 잘라 말하면 섹스가 좋아? 싫어?
키이츠: 좋아
하루카: 부끄럽지만 상대가 키이츠라면 싫지 않은…편
- 보통 어떤 상황에서 섹스해?
키이츠: 보통은 침대 위에서 정상위. 하루카가 좋아하니까
하루카: 집에서 할 때가 많아. 거실이나 침대에서
- 하고 싶은 상황은?(장소, 시간, 의상 등)
키이츠: 사오토메 흉내는 못 내겠지만(웃음) 부끄러워서 우는 하루카도 꽤 좋은데… 그러고 보니 전화로 해 본 적 없는 것 같아
하루카: 평범한 걸로 충분해, 평범한 걸로!!
- 샤워는 섹스 전? 후?
키이츠: 그때그때
하루카: 전후 전부 했으면 좋겠어
- 섹스할 때의 약속은 있어?
키이츠: 후배위로는 안 해. 또 하루카가 피곤해 보일 때는 같이 잠만 잔다거나 할 때가 종종 있어
하루카: 얼굴이 안 보이면 싫어…
- 상대 외에 섹스한 적은 있어?
키이츠: 덕분에
하루카: 몇 번 정도는…
-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면 몸이라도’라는 생각에 대해. 찬성? 반대?
키이츠: 입장이나 생각에 따라서는 뭐.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기분만은 이해가 되기도 해
하루카: 반대, 반대, 절대 반대!!
- 상대가 나쁜 사람에게 강간당했어! 어떻게 할 거야?
키이츠: 안아줘야지. 그것밖에 못할 걸.
하루카: 키이츠가 공이라는 걸 내가 알게 해 줘야지
- 섹스 전후, 좀 더 부끄러운 건 어느 쪽?
키이츠: 후… 하루카는 다 내려놓으면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웃음)
하루카: 전. 키이츠의 전희에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녀석이 있다면 보고 싶을 정도야
- 정말 친한 친구가 ‘외로우니까 오늘만…’이라며 섹스하자고 한다면 어떻게 할래?
키이츠: 뭐? 사오토메가? 미쳤어!! 어쩔 수 없으니 같이 육법전서 정도는 읽어 줄 순 있지만…
하루카: 요시다라면 다독여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서로 무리가 아닐까(^_^;)
- 자신은 섹스를 잘한다고 생각해?
키이츠: 일단은
하루카: 그래봤자 초보겠죠
- 상대는 섹스를 잘해?
키이츠: 행위 그 자체보다 유혹하는 방법이 자연스럽고 잘한다고 해야 하나
하루카: …그렇다고 생각해
- 섹스 중 상대에게 들었으면 하는 말은?
키이츠: 좋아해… 그거면 충분하지
하루카: 없어요. 오히려 넌 좀 다물어!!라고 생각합니다
- 섹스할 때 상대의 얼굴 표정 중 좋아하는 표정은 뭐야?
키이츠: 불안한 눈을 하고 네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어 하며 호소하는 얼굴이려나
하루카: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모, 몰라…
- 연인 외에 섹스해도 괜찮다고 생각해?
키이츠: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하루카: 안 돼!!
- SM 같은 것에도 흥미가 있어?
키이츠: 흥미만이라면
하루카: 평소에도 이 자식은 S라고 생각합니다!!
- 갑자기 상대가 섹스하자고 안 하면 어떡해?
키이츠: 눈치를 보겠지
하루카: 병원에 데리고 갈래. 간 김에 초음파도 찍어 볼까?(웃음)
- 강간은 어떻게 생각해?
키이츠: 기본적으로 말할 가치가 없음
하루카: 최악이지
- 섹스하면서 힘든 점은?
키이츠: 내가 가기 전에 쓰러져 버리는 것… 정도. 하지만 기절한 하루카도 귀여우니까 힘들다고 말할 정도로 힘든 건 아닌가
하루카: 역시 키이츠의 요구를 전부 받아주지 못하는 것…이려나
- 지금까지 섹스한 장소 중 가장 스릴있었던 곳은 어디?
키이츠: 특별히 그런 느낌이 들 만한 곳에서는 아직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하루카: 호텔 주차장…같은 곳
- 받아들이는 쪽에서 섹스하자고 유혹한 적은 있어?
키이츠: 있어
하루카: 응!? 있었어!?
- 그때 공의 반응은?
키이츠: 자연스럽게 반응했지
하루카: 그러니까 그런 적이 있었다고!?
- 공이 강간한 적은 있어?
키이츠: 그야 유혹당해서. 게임에서 이겼으니까라고 주장해도 안 되려나?
하루카: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 그때 수의 반응은?
키이츠: 사실 싫지만은 않은 것 같았어. 싫어하게도 안 했지만
하루카: 지금 떠올려도 화가 나!! 아팠다고!!
- ‘섹스 상대’의 이상형은 있어?
키이츠: 특별히 없어
하루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아
- 상대는 이상형에 얼마나 가까워?
키이츠: 하루카가 그럴 수 있을까?
하루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이 생각이 안 날 정도?
- 섹스할 때 도구는 사용해?
키이츠: 따로 쓰진 않아
하루카: 그런 걸 쓰게 둘 것 같냐!!
- 당신의 ‘처음’은 몇 살 때?
키이츠: 14살 정도였나
하루카: ……18살 정도였나
- 지금 사귀는 상대?
키이츠: 죄송합니다(넌 죄송하자)
하루카: 미안합니다
- 어디에 키스 받을 때가 가장 좋아?
키이츠: 하루카가 해 주는 거라면 어디든
하루카: 관, 관자놀이라든가…
키이츠: 어? 그랬어!?
하루카: 이마나 코끝 같은 데보다는 좋다는 거야!!
- 어디에 키스하는 게 가장 좋아?
키이츠: 역시 입술
하루카: 이상한 곳보다야 입술에 받는 게 가장 부끄럽지 않을지도
- 섹스 중 상대가 가장 기뻐하는 것은 뭐야?
키이츠: 내가 하루카만의 것이라는 걸 실감하게 하는 것
하루카: 해줘…라고 말한 대로 해 줄 때?
- 섹스 중 무슨 생각해?
키이츠: 하루카 생각만.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같은 것
하루카: 키, 키이츠 생각밖에 안 나
- 하룻밤에 몇 번 정도 해?
키이츠: 시간에 따라? 일단 하루카는 내 세 배는 가게 한다가 목표(웃음)
하루카: 그거 뭘 기준으로 한 번이라고 하는 거야?
- 섹스 중 옷은 스스로 벗어? 상대가 벗겨줘?
키이츠: 내가 벗어. 아주 가끔 조르기도 하지만
하루카: 99%는 벗겨지고 있습니닷
- 당신에게 섹스란?
키이츠: 하루카 한정 핑계 없는 대화
하루카: 유일하게 키이츠와만 하는 것…?
- 상대에게 한 마디
키이츠: 사랑해, 하루카. 계속 같이 있자
하루카: 과로사만은 하지 말아줘(웃음)
= = =
역시 원작자의 덕질이 최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開き直る를 옮기는 게 꽤나 까다로웠다. 의미는 알겠는데 우리말로 옮기는 게… 여기서는 다 내려놨다고 옮겼다.
[스팍/커크 영픽 추천] Call it Friendship, Call it Family, Call it love 11 Apr 2020, 3:23 pm
Call it Friendship, Call it Family, Call it Love by itrieddontjudgeme
12636 words
폰파가 찾아와 조용히 죽기를 결심한 스팍과 그 꼴을 두고 보지 못하는 짐의 이야기. 폰파 픽인데 짐이 더 박력 있어서 끙끙 앓게 되니까 봐 주세요.
보통 영픽 번역 끊어서 올리는 분량이 한글 2014 기본 설정 기준 A4 8페이지인데 발췌만 11페이지 했음.
Call it Desperation (자포자기라고 해도 좋아)
“맥코이 선생, 잠시 면담을 요청하고 싶은…”
“나중에, 스팍.”
맥코이는 정신없이 의무실을 오가는 간호사와 환자들의 쇄도하는 작업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스팍의 말을 끊었다.
“여기 난리난 거 안 보여? 쓸데없는 놈들 때문에 바빠 죽겠어. 별 엉뚱한 데 손가락이니 코니 붙여오는 뭐 하나 똑바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쓸데없는 선원들 같으니라고!”
맥코이는 죄 지은 얼굴로 진찰대에 앉은 두 청년을 가리켰다. 맥코이가 목소리를 높이자 둘은 초조하게 자신들의 손만 내려다 보았다.
“한심한 놈들! 그러고도 기술부야? 어떻게 저 혼자 감전 사고를 당할 수가 있어?”
맥코이는 스팍을 피해 채플 간호사에게 몸을 돌렸다.
“3번 진찰실에서 2258년에 임질 항생제 내성이 생긴 안도리아인을 치료하고 올 테니까 이 두 멍청이들한테 붕대 좀 감아줘.”
스팍은 진찰실로 향하는 복도를 향해 몸을 돌린 맥코이를 막아섰다.
“맥코이 선생, 화가 나는 건 알겠는데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건 알아줬으면…”
“빌어먹을, 뾰족 귀. 저리 비켜! 생사가 달린 일이면 모를까, 이 의무실에서야 그것도 일상다반사라는 거 알지? 그게 아니면 지금 내 일이 더 중요해.”
스팍을 밀치며 모퉁이를 돌아서려는데 스팍이 조용히 말했다.
“레너드, 부탁해.”
맥코이는 스팍의 사정하는 목소리에 불편한 기색으로 문가에 서서 스팍을 쳐다보았다. 맥코이 눈에 저 냉정한 자식이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인 건 처음이었다. 스팍이 저렇게 약해보이다니 뭔가 아주 안 좋은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맥코이는 다시 한번 스팍을 흘끔 쳐다보았다.
“알았어, 스팍. 내 사무실에 가 있어. 몇 가지 일 좀 처리하고 채플 간호사한테 이 정신없는 상황만 넘기고 5분 안에 갈게.”
스팍은 시선을 피하며 맥코이의 사무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고마워, 선생.”
그리고는 자리를 떴다.
– – –
“고통의 원인은 알고 있어, 선생.”
스팍이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스팍은 책상을 쥔 손을 쳐다보며 힘을 빼느라 애를 썼다.
“문제가 뭔지는 알아.”
스팍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대단하네. 척척박사인 건 알았지만 의사 자격도 있으신 줄 미처 몰라봤어.”
맥코이가 비꼬았다.
“그럼 털어놓든가. 왜 있는 승질 없는 승질 다 부리는 건데?”
(* cat in a bag이 아니고 bag of cats를 잘못 사용한 것으로 보임. let the cat out of the bag이라는 숙어는 우연히 비밀을 드러낸다는 뜻이며 여기에서 유래된 put the cat in the bag이라는 숙어는 수상한 건 그냥 수상한 채로 둔다는 의미가 있음.)
스팍은 계속해서 맥코이의 어깨 너머를 쳐다보며 말했다.
“벌칸 위원회 대표가 폰파의 일반 특성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았나?”
스팍은 믿을 수 없다는 맥코이의 시선을 피했다.
“벌칸 발정기?”
맥코이가 발끈했다.
“장난해? 넌 아직 벌칸 기준으로 청소년이라 폰파가 시작되려면 최소 10년은 있어야 하잖아!”
“내 몸 정도는 나도 알아, 선생.”
스팍이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맥코이는 스팍의 날카로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좋아. 12년간 우주생물학을 공부한 걸 바탕으로 네가 10년이나 일찍 폰파를 겪는 게 생리학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해 봐. 궁금해 죽겠으니까!”
맥코이는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쳤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생물은 멸종 위기가 닥쳤을 때 짝짓기를 하는 경향이 있지.”
스팍이 차갑게 대꾸했다. 맥코이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스팍을 쳐다보았다.
“그 말은 설마…”
(중략)
“뭘 또 숨기고 있는 거야, 스팍? 말을 안 하면 나더러 어떻게 도우라는 거야?”
“말하고 있잖아!”
맥코이가 다그치자 스팍이 이를 드러내며 큰소리를 냈다. 스팍은 맥코이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지금 난 벌칸인으로서는 가장 사적인 방법으로 내 자신을 드러내고 있어. 당신에게 우리 종족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며 죽어가고 있다고!”
스팍이 맥코이에게 떨어져 다시 자리에 앉으며 작게 털어놓았다.
“나도 노력하고 있어.”
“알아, 스팍. 말실수를 사과할게. 노력하는 거 알아. 하지만 네 목숨을 구하려면 전부 다 말해줘야지.”
맥코이가 다정한 표정으로 스팍을 쳐다보았다.
“난 목숨을 구하자고 여기에 온 게 아니야.”
스팍이 긴장한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그 말에 당황한 맥코이가 되물었다.
“설마 벌써 나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거야, 뾰족귀? 벌칸식 비관주의는 때려치우고 당장 전부 다 털어놔.”
이번엔 맥코이가 스팍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다그칠 차례였다.
스팍은 대화의 방향에 물리적으로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땀에 젖은 피부, 찌푸린 눈썹, 내려간 입꼬리. 이미 스팍의 몸에선 초기 폰파의 징후가 엿보였다. 절대 동요하지 않던 벌칸인은 이제 그 속내가 훤히 보이는 상태였다.
“내가…”
스팍이 말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내가 다른 사람과 우연히 초기 유대를 형성했다는 걸 알아챘어.”
스팍의 온몸이 말하는 것과 모순적으로 그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다행인 거 아니야?”
맥코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사람한테 잠깐 유대를 맺어달라고 부탁해서 며칠 추잡한 짓 좀 하고 깔끔하게 헤어지면 안 되는 거야?”
“내겐 일생일대의 일이니 그렇게 태연하게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스팍이 으르렁거렸다.
“미안해, 스팍.”
맥코이는 전혀 미안한 기색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건 대답이 아닌데.”
“내 애정의 상대에겐 같은 감정이 없어.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
스팍이 차갑게 대꾸했다.
“음, 스팍. 네가 제대로 설명만 하면, 그러니까 네 생사가 달린 일이라는 걸 말만 하면 그 사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와의 결합을 강제할 생각은 없어.”
스팍은 화를 제대로 감추지도 못했다.
“거절할 수 없다면 그걸 동의라고 할 수 없지. 죄책감으로 나와 관계하게 할 일은 없을 거야. 내가 그토록 경외하는 남자를 강간하진 않겠네.”
마지막 문장은 너무나 단호해서 맥코이가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운명의 사랑이라는 거야? 허. 너한테 그런 게 있을 줄은 몰랐네.”
“날 비웃는 건 관둬, 선생.”
스팍의 표정이 얼마나 사납던지 맥코이는 자신의 안전을 걱정할 뻔 했다.
“도대체 누구야, 스팍?”
“지금 대화에서 그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군.”
맥코이의 추궁에도 스팍의 대답은 차가웠다.
“네 목숨을 살릴 수 있는데 당연히 관계가 있지!”
맥코이가 화를 내며 씩씩거렸다. 스팍이 맥코이와 눈을 맞추자 맥코이의 몸이 굳었다.
“그 잘난 추리력을 사용해 봐, 선생.”
스팍이 마지막으로 체념한 듯 말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표현할 유일한 사람이 누구일지.”
“대체 그걸 내가 어떻게…”
맥코이는 하던 말을 멈췄다.
“짐이구나.”
“당연하지 않나?”
스팍이 맥코이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약해 보이는 스팍은 처음이었다.
– – –
“그럼 이제 어쩌자는 건데?”
결국 맥코이는 스팍을 쳐다보며 물었다. 스팍은 한참 말이 없었다.
“아무 것도 안 할 거야.”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아니, 그건 받아들일 수 없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런 식으로 포기하지 않아도…”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스팍은 따져 볼 여지도 없이 단호하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맥코이가 계속 우겼다.
“정말 끝이라고? 그럼 어쩔 건데? 죽을 거야?”
스팍은 말이 없었다.
“죽겠다고? 그건 치료 상담이 아니라 자살하게 도와달라는 거잖아!”
맥코이가 따졌다. 스팍은 무표정한 얼굴로 화를 내는 맥코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내가 이래야 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그냥 죽게 두라니 생각할 것도 없어. 하물며 자살을 돕는 건 절대 안 돼!”
맥코이가 폭발했다.
“분명 다른 방법이…”
“다른. 방법은. 없어.”
스팍의 목소리가 위험했다.
“일일이 설명해 줘야겠군, 선생. 선생에게 내게 남은 선택지를 들려주겠어. 지금 어떤 상황인지 깨닫게 해 주지.”
스팍의 눈은 차갑고 단호했다. 스팍은 모서리에 금이 갈 정도로 세게 책상을 쥐고 있었다.
“첫 번째. 폰파 기간 동안 내 선실에 갇힌 채 명상을 할 경우. 내 정신은 닿지 않을 반려를 불러댈 거고, 나는 그 욕구를 차단하기 위해 정신을 닫아버릴 거야. 며칠 동안 큰 고통을 겪으며 누워있다가 결국 열기에 굴복하겠지. 난 폰파의 열기에 사망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진이 빠져도 죽지는 않은 채 깨어나겠지. 그리고는 완전히 미쳐서 결국 죽어 버릴 거야.
두 번째. 선실에 갇혀 있으려고 하지만 열기가 너무 강했을 경우. 선실의 문을 뜯어내고 앞길을 막아서는 선원들을 뚫고 함장님을 찾으려고 들겠지. 승선한 선원 그 누구와 비교해도 세 배나 강한 데다 분노한 텔레파시 능력자를 선원들이 감당이나 할 수 있을 것 같나?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본능만 남은 짐승을? 난 선원들이 페이저에 손도 대기 전에 상대의 정신을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어버리겠지. 싸울 수 있는 거리라면 토막을 낼 테고. 그렇게 해서 함장님을 손에 넣으면 내가 어떻게 할 것 같나? 내가 함장님께 예의를 차릴까? 수많은 도전자들과 싸워서 쟁취한 전리품을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나?“
스팍의 목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스팍의 손 끝에서 책상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스팍은 계속 분노하고 있었다.
“세 번째. 함장님께 모든 걸 털어놓는 경우. 함장님은 잘못된 성실함과 우정으로 내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시겠지. 나는 폰파의 극심한 고통에 스스로 자제도 못하고 내가 이 우주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험하게 강간하고 정신적으로 범할 거야. 되돌릴 수도 없는 방식으로 함장님을 매어 두겠지. 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잔인하게 취급한 주제에 가장 친밀한 방식으로 평생 매어두고 사는 거야.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하지도 않아. 난 함장님의 목을 조르고, 자유를 빼앗고, 함장님이 스스로를 희생한 기억을 가진 채 억지로 살아가게 할 거야. 당장은 날 싫어하지 않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내게 분노하겠지. 그런 짓을 하고도 살 순 없어.”
스팍이 평정심을 되찾으려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책상에서 손을 뗐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네 번째 선택지가 남았지.”
그리고 스팍은 말을 멈췄다.
“내가 널 죽게 도와주는 거 말이지.”
맥코이가 조용히 대답했다.
– – –
짐이 한숨을 쉬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뭔지 말해줘.”
스팍은 솔직하고 사심 없는 짐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짐이 입을 살짝 열며 뭔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스팍은 짐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누르고 속삭였다.
“나가 주세요.”
멍이 들게 하려는 게 분명한 손가락 두 개가 짐의 명치를 누르며 짐을 도어 센서 밖으로 밀어냈다. 스팍이 물러서자 짐의 눈앞에서 빠르게 문이 닫혔다. 짐은 충격에 휩싸여 닫힌 문을 쳐다보고는 가슴을 문지르며 빈 복도에서 기가 막힌 듯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고 있네.”
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무슨 일인지 빌어먹을 대답을 듣고 말 거다, 저만 잘난 뾰족귀 새끼야.”
짐이 무릎을 꿇고 빠르게 문 옆의 벽에서 센서 패널을 뜯어낸 뒤 스팍의 방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배선을 고쳤다. 3분간 지급된 주머니칼과 페이저로 배선을 고친 짐이 문을 열었다.
짐이 스팍의 선실로 들어가 센서가 망가진 문을 닫았다.
“이제 문 뒤에 숨을 수도 없는데 어쩔…”
갑자기 목을 틀어쥔 날렵하고 인간의 것이 아닌 강력한 손아귀에 기도가 막혔다.
“나가달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스팍이 얼굴을 바싹 들이댄 채 위험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움직였지?
짐은 문 옆의 벽에 등을 기댄 채 몸을 굳히고 서 있었다. 코부터 엉덩이까지 바싹 몸을 붙인 스팍 때문에 꼼짝할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3년도 전에 함교에서 벌어졌던 일 이후로 스팍과 이렇게 가까운 적은 처음이었다. 그때와 소름끼칠 정도로 비슷하게 스팍은 화가 나 굳은 얼굴로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스팍의 손아귀 힘이 조금 약해졌지만 짐을 풀어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팍은 짐의 턱 밑, 자신의 손 바로 위에 코를 들이대고 으르렁거렸다. 소유욕을 드러내는 짐승 같은 소리였다.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였다.
짐은 가만히 몸을 굳힌 채 스팍의 반응을 살폈다. 가빠지려는 호흡도 평소처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갑자기 몸이 뒤집히며 얼굴이 벽에 눌렸다. 스팍의 왼쪽 손은 여전히 짐의 귀 아래, 목덜미를 쥐고 있었고, 스팍의 오른손은 짐의 엉덩이를 향했다. 스팍의 손에 깜짝 놀란 짐이 스팍의 손목을 잡으려 움찔거렸다. 짐승 같은 울음소리에 짐의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쳤고, 짐은 진심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스팍이 손을 꺾어 짐의 손목을 쥐고 벽에 고정시켰다. 험악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짐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스팍은 마치 불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짐에게서 멀어졌다. 짐이 몸을 돌렸을 때 보였던 스팍의 당황한 얼굴은 억지로 끌어낸 평소처럼 차가운 얼굴 뒤로 사라졌다.
스팍이 개인 통신기로 손을 뻗어 빠르게 연락을 취했다.
“맥코이 선생, 내 선실로 즉시 와 줘야겠어. 함장님이 부상을 입어서 치료를 받으셔야 해.”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던 스팍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말했던 것도 가져와 줘.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스팍이 통신을 종료하고 짐에게서 몸을 돌렸다.
짐은 부러진 손목을 쥐고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스팍은 얼굴을 감싼 채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사과드립니다, 함장님. 제가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대체. 뭐야. 스팍.”
짐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 순간 맥코이가 스팍의 선실로 뛰어들어왔고 강한 팔로 짐을 끌어냈다. 떠나면서 맥코이는 스팍에게 의료용 가방을 던졌다.
“고마워, 선생.”
스팍이 조용히 대답했다.
“고마울 거 없어. 난 아직도 우리가 단단히 실수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맥코이는 화도 나고 당황한 얼굴의 짐을 돌아보았다.
“둘이 뭘 감추고 있는 거야? 대체 무슨 일인데?”
짐이 악을 쓰며 닫히는 문 너머로 스팍을 쳐다보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슬픈 눈이었다.
갑자기 어둠이 찾아왔다.
– – –
Call It Inspiration(감동이라고 불러도 좋아)
이마 위에 놓인 손의 감촉에 스팍은 정신을 차렸다.
“너 때문에 너무 너무 화가 나.”
짐의 조용한 목소리는 그의 말과는 달리 부드럽고 슬펐다. 짐이 스팍의 이마에서 손을 떼고 스팍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잃었는지 알아, 스팍?”
짐의 목소리는 전보다 더 부드러웠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거의 다 나를 버렸어. 아니면…”
중얼거리던 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죽었든가.”
짐이 이를 갈며 스팍과 시선을 피했다.
“그걸 막아내기에 난 너무 약했고, 어렸고, 어리석었고, 용기가 없었지.”
부드럽게 스팍의 머리카락을 쓸던 손을 갑자기 멈춘 짐이 거칠게 머리채를 틀어쥐고 스팍의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자신과 마주보게 했다.
강렬하고 어두운 눈빛은 싸움을 앞둔 사람의 눈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거든.”
스팍에게 똑똑히 들리게 하려는 듯 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제 난 충분히 강해. 아무도 죽게 두지 않을 거야. 널 살릴 거야. 그래서 네가 날 싫어하게 되더라도.”
(중략)
“네가 움직이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때까지 몇 가지만 말해 줄게. 먼저 넌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야. 너랑 본즈는 나한테 진짜 가족 같은 사람들이고 난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어. 절대.”
짐의 단호한 목소리에 스팍은 마치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두 번째로 본즈한테 다 들었어.”
그 말에 스팍의 몸이 긴장하는 걸 짐이 느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네가 날 사랑하는 건 알아. 네게 이런 걸 해 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래서 할 거야.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거야. 네가 부탁하는 것, 네게 필요한 것, 전부.”
(중략)
“하지만 내가 틀렸더라고.”
짐의 시선이 점점 더 단호해졌다.
“네가 포기했거든.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날 떠나려고 했어.”
스팍은 결심이 선 짐의 턱선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모습도,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분노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난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난 우리 사이의 이 연결을 포기하지 않아. 이게 진짜라는 걸 아니까.”
최후 통첩이었다.
“우정이라고 해도 좋고, 가족이라도 해도 좋고,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아. 어디 네 마음대로 불러 봐.”
짐은 스팍의 목덜미를 잡고 이마를 맞댄 채 속삭였다.
“난 이미 너랑 평생의 유대를 맺었어, 스팍. 그리고 오늘은 이걸 공식적인 관계로 만들 거야.”
짐이 말을 멈추고 몸을 움직여 다시 한번 스팍과 시선을 맞췄다.
“넌 다시는 내 곁을 떠나지 못해.”
커크 박력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스팍/커크 영픽 번역] In Time (7장: 열여덟 살 -4-) 26 Jan 2020, 12:37 pm
Transformative Works Statement:
I hereby give permission for anyone to translate any of my fanfiction works into other languages, provided they give me credit and provide a link back to my profile or the original work. Thank you for the interest; I’m always honoured when people ask to translate my work.
* 이 소설은 스팍과 커크가 공수교대를 합니다. 리버스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스팍은 처음부터 수영이 괜찮은 생각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어쨌든 밤이 늦어 거의 텅 빈 실내 수영장의 한가운데에 와 있었다. 줄로 구역이 나뉜 저 먼 끝에서 수영장을 왕복하는 몇 사람이 있었다. 스팍과 짐은 가끔씩 비닐 공을 던지거나 미끄럼틀이 끝나는 주변 구석에 앉아 물놀이를 즐기는 게 대부분이었다.
스팍이 입은 건 검은색 반바지 수영복이었고, 짐도 검은색… 반바지 수영복이었다. 하지만 속옷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 터였다. 몸에 딱 붙는 일반 수영복은 아니지만 천이 밀착되는 건 마찬가지여서 짐의 엉덩이를 간신히 가렸다. 수영복은 짐이 물 밖으로 나올 때마다 들러붙어 모든 걸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짐의 구석구석이 전부 노출됐다. 짐이 물속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영복을 입은 짐은 반짝반짝 빛났다. 푸른 눈은 물이 반사되어 더 푸르게 빛나는 듯했고, 노란 머리와 분홍빛 입술을 더욱 강조했으며, 아침에 면도를 한 피부는 매끄러웠다. 배는 매끈했고 가볍게 근육도 잡힌, 온 몸이 강하면서도 늘씬한 이상적인 남성의 모습이었다. 짐은 의심할 나위 없이 멋졌다.
실수였다. 스팍은 시선을 돌리기 위해 애써 노력해야 했고, 몇 번인가 짐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볼을 녹색으로 물들였다. 짐 외에는 시선을 돌릴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타일이 깔려 있고 작은 테이블이 놓인 구석의 키오스크 옆에는 비키니를 입은 여성 둘이 있었다. 하지만 짐은 단 한 번도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짐은 스팍을 향해 수영해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저쪽으로 가서 다시 미끄럼틀 타자.”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형광 파란색 미끄럼틀은 플라스틱 원통으로 완벽히 감싸여 건물 밖을 나갔다 되돌아와 수영장 구석에서 물을 내뿜었다.
“알았어.”
스팍은 물 미끄럼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짐을 거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대답했다. 짐은 물 속에서 스팍을 향해 손을 뻗은 뒤 몸을 돌려 어색한 자세로 사다리를 향해 첨벙거리며 나아갔다. 스팍도 열심히 짐을 쫓았다. 수영장 바닥은 너무 깊어 걸을 수가 없었다.
짐이 먼저 물에서 나와 사다리를 오르는 바람에 스팍에게 물이 튀겼다.
“이것만 타고 집에 가는 게 좋겠어.”
“싫어.”
스팍이 제안했지만 짐은 거절했다.
“10분만 있으면 파도가 올 거야. 파도타기 풀에 와서 파도를 안 타볼 순 없지.”
실내 수영장을 지배하는 파도 같은 건 없었지만, 스팍은 자신이 짐작도 할 수 없는 이유로 인간들이 뭔가를 만들어냈겠거니 생각했다. 스팍은 대꾸하지 않고 짐의 가랑이 사이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짐을 따라 사다리를 올랐다. 꼭대기에 도착하자 짐은 흐르는 물에 다리를 맡긴 채 난간 없는 작은 단에 앉았다. 대부분 말라 있는 단 꼭대기에는 물이 흐르는 거대한 관이 있었다. 짐이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말했다.
“같이 타자. 내 다리 위에 앉아.”
“그럴 순 없어.”
스팍이 잔뜩 굳어 대답했다.
“에이, 뭐 어때.”
“그러면… 안전하지 않을 거야.”
일반적인 안전 면에서도, 스팍의 신체 반응 제어 면에서도. 짐이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애들은 항상 부모님이랑 같이 타잖아.”
“난 네 부모님이 아니야.”
“이번만 내 아이 해 줘.”
짐이 웃었다.
“응? 몇 년이나 날 키워줬으니까, 물 미끄럼틀 정도는 내가 태워줄게.”
“절대 안 돼.”
“스팍.”
짐이 칭얼대며 고개를 뒤로 젖히자 금빛 머리카락이 스팍의 무릎을 간지럽혔다.
“부탁이야.”
짐이 이런 식으로 사정하면 도저히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스팍은 무척이나 어색한 기분으로 다가가 긴장한 채 짐의 다리 위에 앉았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짐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야 했다. 짐의 몸이 스팍의 등과 맞닿았고, 스팍의 다리에 닿은 허벅지는 따뜻했다. 둘이 착용한 수영복이 얇으니 짐의 젖은 사타구니가 스팍의 엉덩이를 파고들었다. 스팍의 숨이 가빴다. 짐이 두 팔로 스팍을 안았다. 마치 호버크루저를 타는 것 같았다. 둘의 키는 거의 비슷했다. 부모와 아이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가 없었다.
짐의 따뜻한 숨이 스팍의 귓가를 간질였다. 스팍은 짐이 뭔가 말하기를 반쯤 기대했지만, 짐은 아무 말도 없었다.
짐이 출발하자 두 사람은 말도 안 되는 빠른 속도로 미끄럼틀을 내려갔다. 스팍의 다리 아래로 플라스틱의 이음매가 불쾌하게 튕겼지만 다행히 짐 덕분에 등에 물이 튀기는 일은 없었다. 터널 내부는 어둡고 구불구불했고, 빛이 비치면 반쯤 투명해졌다. 짐은 스팍의 귓가에서 크게 환호했다. 스팍은 두 팔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두 손은 본능적으로 짐의 허벅지를 꼭 쥐었다. 짐이 스팍을 꼭 안고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스팍을 어지럽혔다.
몇 번쯤 뒤집히고 회전하더니 두 사람은 다리가 얽힌 채 물속으로 빠졌다. 스팍이 바닥으로 고꾸라지자 짐은 늦지 않게 손을 놓았다. 스팍은 바닥을 차고 물 위로 솟구쳐 올라 기침을 하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스팍은 발을 사용해 물에 뜬 채 한 손으로 머리를 넘겨 시야를 확보하고,가볍게 기침을 하며 눈썹에 묻은 물을 닦아냈다. 짐이 고개를 젖히며 웃는 바람에 스팍은 다시 물에 젖고 말았다.
“정말 재밌다!”
짐이 다시 해 보자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스팍은 다시 물속으로 잠수해 짐과 멀어졌다. 서늘한 물이 짐이 닿은 곳마다 더욱 뜨거워진 피부를 기분 좋게 감쌌다. 몇 미터 앞에 커다란 줄무늬 공이 떠 있는 걸 본 스팍은 다시 물위로 올라와 공을 잡았다. 스팍은 짐이 바로 뒤따라 온 걸 보고도 놀라지 않았고, 짐이 물 밖으로 나가자마자 짐을 향해 공을 던졌다. 머리에 공을 맞은 짐이 투덜거렸다.
“야!”
하지만 공기로 가득찬 공이라 아플 리가 없었다. 짐이 공을 주워들어 스팍에게 되돌려줬고, 둘은 잠시 시간을 때우며 공을 주고받았다.
파도는 갑작스러웠고 예상할 수 없었다. 파도는 둘이 있는 수영장에서만 일었고, 줄로 연결된 다른 사각형 구획에서는 사람들이 왕복 수영을 했다. 그쪽은 멀어서 파도의 영향이 크지 않았지만, 물이 깊은 쪽에서는 큰 파도가 일었다. 스팍은 파도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짐은 즐거운 듯했다.
“우리 보드를 타고 끝까지 가 보자.”
그리고 스팍이 이유를 묻기도 전에 짐이 덧붙였다.
“내가 그러기로 했으니까.”
…둘은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수영장 가에는 다양한 부유 기구가 떠다녔고, 둘은 헤엄쳐 두 사람의 가슴 만한 작은 폼보드 두 개를 잡았다. 둘은 자기 보드 위에 엎드렸다. 스팍은 짐을 따라했다. 둘이 수영장 반대편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 짐이 말했다.
“준비 됐어?”
스팍은 무척이나 아이가 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
둘은 열심히 발장구를 치며 물을 가르고 나아갔다. 스팍은 짐이 시합을 하려 했다는 걸 깨달았고, 시합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쯤 이해가 됐다. 스팍은 최선을 다해 앞을 향해 헤엄쳤고 짐을 상당히 앞지르기도 했지만, 파도가 치는 바람에 50센티미터는 뒤로 물러나야 했다. 기침을 하다 짐이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걸 본 스팍은 다시 최선을 다해 헤엄치더니 다음 파도 때는 보드를 들어 파도를 피하고 파도를 넘었다. 균형을 잡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파도가 치는 사이에 힘껏 발장구를 쳐야 했고 또 그렇게 했다. 끝이 다가올수록 파도는 더 크고 강해졌고, 스팍은 계속해서 짐이 물에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히 논리적이지 못한 두려움이었지만 스팍의 머릿속에는 항상 짐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수영장 측면을 따라 파도가 만들어지는 구멍이 있었고 주변 타일 바닥은 닿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짐은 한 손으로 구멍을 잡고 파도를 타며 제자리를 지켰다. 잠시 후 스팍이 도착하자 짐이 웃었다.
“내가 이겼다!”
스팍도 순순히 인정했다.
“축하해.”
짐은 스팍을 향해 웃기만 했다. 잠시 둘은 제자리를 지키며 인공 파도에 적응했다. 밀려드는 물소리 너머로 대화하는 게 쉽지는 않았고, 스팍은 한참이나 그저 짐을 바라만 보았다. 행복해하는 짐은 특히나 눈부셨다.
십여 분쯤 뒤 파도가 멈추자 스팍은 허기를 느꼈다.
“우리 이만 돌아가서 뭔가 먹을까?”
짐이 한숨을 쉬었다. 싸울 각오도 반쯤 했는데, 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할인 코너에서 음료수 마실래.”
스팍은 설마 그 음료수가 술인가 싶어 눈썹을 들어 올렸고 짐은 눈을 부라렸다.
“한 잔인데 뭐 어때. 어차피 운전은 네가 할 거잖아.”
그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맥주 한 잔을 마신 짐은 대하기도 편해졌다. 짐이 맥주 한 잔에 정신을 잃을 리도 없었다.
역시나 짐은 수영장을 나오자마자 맥주를 주문했고, 맥주를 들고는 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머리카락의 염소를 씻어낸 뒤 탈의실에서 몸을 말렸다. 둘은 사물함 하나를 사용했지만 스팍은 수건과 옷을 챙긴 뒤 짐과 떨어질 수 있도록 사물함을 돌아 나갔다. 늦은 시간이라 탈의실이 비어 있었다. 짐은 반대쪽에 서서 한숨을 쉬었다.
“둘 다 남자잖아.”
스팍은 대답하지 않았다. 스팍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수영복을 벗은 뒤 새 속옷과 바지를 입었다.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입었던 속옷과 젖은 수영복을 수건으로 쌌다. 짐에게 향하기 전 스팍이 조심스레 불렀다.
“단정히 입었어, 짐?”
“난 단정해 본 적이 없는데.”
농담이려니 생각했다. 잠시 기다리자 짐이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다 입었어.”
짐이 타올을 옆구리에 낀 채 스팍과 비슷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아직 몸에는 물방울이 남아 있었고, 머리카락은 이마로 흘러내린 채였다.
그래도 멋졌다. 너무나도. 짐은 맥주를 마시며 문을 향해 손짓했고 둘은 함께 밖으로 나섰다. 차에 도착하자 짐은 남은 맥주를 마시고 컵은 건물 옆 재활용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스팍은 차가 젖지 않도록 둘의 수건을 가방에 넣었다. 스팍이 가방을 뒷좌석에 두었고 짐은 보조석에 앉았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스팍은 바람이 둘의 머리카락을 완전히 말려버리지 않기를 반쯤 바랐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은 떨쳐내야 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짐이 잘생긴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스팍이 집까지 운전하는 동안 짐은 수영하면서 있었던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일들과 행동, 집에 도착하면 어떤 게임을 할지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별이 떠올랐고 스팍은 집에 도착하면 사과나 바나나를 먹을 생각이었다. 짐이 어째서인지 아직 깨지 못한 딥 스페이스 세븐을 더 하자고 말했다. 짐은 스팍 탓을 하면서도 매번 같이 하자고 우겼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딥 스페이스 에잇에선 네가 함장할래?”
스팍은 그때까지 둘이 같이 살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스팍은 짐이 함장을 더 잘할 것 같다는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네가 최고의 일등 항해사이긴 하지.”
스팍은 짐이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스팍은 실제 게임 속에서도 그렇다는 걸 알았지만, 짐의 말은 전혀 다를 것이다. 그게 둘의 관계라고 스팍은 생각했다. 성격이 대조적인 둘이 절대 크게 멀어지는 일이 없다는 건 늘 놀라운 일이었다. 짐은 둘 사이의 ‘연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팍은 그저 놀라웠다.
집에 도착했을 땐 날이 쌀쌀해져 있었다. 스팍은 주방에서 바나나를 먹었고 짐은 게임을 준비한 뒤 방에서 담요를 가지고 왔다. 게임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지만 스팍은 다른 벌칸인에게 인정하지는 못해도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굳이 그런 시간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거실에 갔을 때 화면은 꺼져 있는 상태였다. 컨트롤러는 탁자 위에 있었다. 스팍은 짐이 담요로 둘이 오붓하게 앉을 공간을 마련해 둔 소파로 걸어갔다. 스팍은 짐 옆에 앉았고 짐은 담요를 들어 둘을 감쌌다. 스팍은 컴퓨터에 명령하기를 기다리며 짐을 쳐다보았다. 조명을 켜지 않아 분위기 있는 공간에 희미한 달빛이 아직 촉촉한 짐의 옆얼굴을 비췄다.
짐은 너무나 가까웠고 둘의 다리는 맞닿아 있었다. 서로 어깨가 스쳤다. 짐이 코앞에서 스팍을 마주보았다. 방은 따스했다. 짐이 한 손을 스팍의 허벅지 위에 올렸고, 스팍은 눈을 깜박이며 쳐다보았다.
짐이 바로 옆에 와 있었다. 짐이 스팍의 귀를 핥았다. 스팍이 몸을 떨며 작은 소리로 불렀다.
“짐…”
이래서는 안 됐다.
둘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옳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나도 괜찮아지는 일은 없었지만 짐은 스팍의 옆얼굴에 입을 맞추고 뾰족한 끝을 향해 귓바퀴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스팍이 짐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여전히 약하지만 좀 더 강하게 불렀다.
“짐…”
짐이 실망한 듯 끙 소리를 내더니 고작 몇 센티미터 떨어져 스팍과 이마를 맞댔다. 짐의 손은 스팍의 허벅지 안쪽을 더듬어 오르며 조금씩 스팍이 반응해서는 안 될 곳으로 다가왔다. 짐은 다른 손으로 스팍의 허리를 감쌌다. 스팍의 셔츠는 너무 얇기만 했다. 짐의 눈은 완전히 감겼고 스팍은 반쯤 감긴 채였다. 짐이 속삭였다.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봐.”
“뭐?”
스팍은 절대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벌칸인이 아니더라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해도.
짐이 눈을 뜨고 서로 마주볼 수 있을 만큼 멀어졌지만, 여전히 둘의 코끝이 스칠 정도의 거리였다. 짐의 손바닥이 스팍의 바지 위 불룩한 곳에 도착해 지긋이 눌렀고 스팍은 반응하지 않기 위해 입 안을 깨물었다. 스팍의 손은 짐 옆에 그저 툭 떨어져 있었다. 멈춰야 했다.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만할게.”
짐이 미간을 찌푸린채 말했다. 상처입은 듯한 짐은 아름다웠다.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을게. 약속할 테니까… 날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봐…”
원한다는 건 조금 다른 얘기였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었다. 스팍도 짐을 원했지만 스팍 안의 벌칸인은 거짓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스팍 안의 인간은 짐이 스팍을 떠나는 일은 절대 없기를 바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짐이 스팍의 바지 위를 감싼 채 문질렀고, 스팍의 셔츠를 들어올려 얇은 천 아래 피부를 따라 따뜻한 손가락을 움직였다.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스팍은 그 동작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스팍은 짐보다 강했다. 당장이라도 짐을 밀어내고 자리를 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스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릴없이 입을 열었고 짐은 고개를 꺾어 입술을 맞댔다. 입속에 짐의 혀가 들어왔을 때 스팍은 부끄럽게 신음했다. 짐의 손이 떠났려고 할 땐 한심할 정도로 눈에 띄게 훌쩍이다 빠르게 멈췄다. 짐이 스팍의 바지 버클을 풀었고, 짐의 손가락은 스팍의 피부를 따라 짙고 구불구불한 털을 지나 속옷 속을 파고들었다. 스팍이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고 짐도 삼켰다. 짐의 손이 이미 단단해진 채 만져주길 기다리며 욱신거리는 스팍의 성기 위로 미끄러졌다. 짐은 스팍의 성기를 감싸고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신음했다. 짐이 입술을 떼고 이마를 맞댔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 침이 실처럼 이어져 있었다. 짐이 스팍의 성기를 부드럽게 쥐고 쓸었다.
스팍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성기는 단단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스팍이 끙끙댔다.
“짐.”
이미 몇 번이나 절정에 오른 것처럼 숨이 가빴다. 짐이 신음했다.
“시발, 네가 내 이름 그런 식으로 부르니까 돌겠어.”
스팍은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내심 다짐했다. 이런 행동을 부추길 순 없었다. 짐이 스팍을 위아래로 쓸어올렸다. 스팍은 미간을 좁혔고 짧게 우는 소리를 냈다. 멈춰야 했다. 멈출 수 없었다. 스팍의 손가락은 한심하게 짐의 셔츠를 쥐고만 있었다. 짐이 완벽한 손으로 천천히 스팍을 쓸었다.
“네가 갖고 싶어 미치겠어.”
짐이 스팍의 옆얼굴에, 귀에 입맞추며 속삭였다.
“네 모든 게 너무 사랑스러워. 네가 날 떠난다고 생각하면 돌아버릴 것 같아. 네가 없으면 아카데미에 가고 싶지 않아, 스팍. 널 내 주머니에 넣어서 내가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니고 싶어. 내 침대에 눕혀놓고 사랑해 주고 싶어. 잠이 들 때까지 널 껴안고 싶어. 널 내 안에 담고 싶고 널 나로 채우고도 싶어. 아침마다 네 잘생긴 얼굴로 잠이 깨고 싶어. 널 너무 너무 원해…”
스팍은 과호흡이 온 것 같았다. 고동은 핏줄을 타고 빠르게 뛰었고, 짐의 손 안으로 뛰어들지 않으려고 엉덩이를 부들부들 떨었다. 터질 것 같은 머리는 산소가 부족해 가눌 수가 없었다. 피부가 뜨겁게 익었다. 전신으로 짐을 느꼈다. 스팍이 원하던 바였다. 짐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강력하게 짐을 원했다. 하지만… 하지만…
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진심이었다. 짐은 스팍을 꼭 쥐고 익숙하게 쓸어올렸다. 둘은 전신을 맞댄 채 이불 속으로 다리를 뻗고 어색하게 소파 위에 엉켜 있었다. 짐에게선 염소 냄새가 났다. 짐의 느낌은 좋기만 했다.
“자위할 때마다 널 생각했어.”
짐이 말을 이었다. 스팍은 짐의 품 안에서 산산조각난 채 떨리는 난파선 같았다.
“내가 가는 걸 한 번도 못 들었다면 믿지도 않겠지만 들었다고 해도 넌 아무 말 안 했겠지. 다른 사람을 생각하려고도 해 봤어. 정말이야. 다른 사람이랑 자보기도 했어. 그래도 내가 원하는 건 너야. 너밖에 없어.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 너만 곁에 둘 수 있다면 다 포기할 수 있어. 스팍, 시발… 넌 내 전부야.”
짐도 스팍의 전부였다. 스팍의 심장이 아팠다. 눈물을 닦아야 했다. 눈물샘이 고장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짐을 밀어내야 했고 스팍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모든 논리가 허물어졌다. 짐의 애무도 훌륭했지만 스팍을 정말 흥분시킨 건, 전신을 떨리게 한 건 짐의 말이었다. 짐은 다시 부드럽고 다정하게 혀가 얽히는 입맞춤을 했다. 스팍도 짐에게 입을 맞췄다.
스팍도 짐에게 입을 맞췄다. 스팍은 실패하고 말았다. 스팍은 끔찍한 보호자였다. 권한을 남용했고, 부도덕했고, 추잡했다. 그럼에도 스팍은 그저 짐에게 입을 맞추고, 짐의 혀를 빨아들이고, 짐의 입술을 깨물고 짐을 몰아붙여 기어코 짐의 신음을 들었다. 마치 음악 같았다. 스팍이 짐을 향해 들썩이고 또 들썩였고, 짐은 스팍을 잡아당기며 볼에, 코에, 턱에 흠뻑 입맞췄다. 짐은 입술로 턱선을 따라 그리며 계속 중얼거렸다.
“사랑해. 사랑해. 정말 사랑해.”
짐 앞에서 스팍은 그 어떤 걸로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스팍은 짐의 손 안에서 터지며 소리냈다. 짐의 얼굴 옆에 고개를 묻고 전에는 내 본 적도 없는 크고 절박한 소리를 냈다. 스팍은 소리를 지르며 파정했고 짐은 계속 흔들고 조이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냈다. 스팍의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스팍은 무의식 중에 엉덩이를 흔들고 온 몸을 떨었다.
서서히 정신이 들자 스팍은 역겹고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스팍이 겨우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스팍이 그저 꼼짝없이 앉아 있는 동안 짐은 다시 다정하게 스팍을 끌어안고 바지를 정리해 주었다.
짐이 부드럽게 손을 떼고 마지막으로 스팍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맞대고는 다시 몸을 떼고 중얼거렸다.
“생각해봐. 부탁이니까 생각해봐.”
그리고 스팍의 앞머리를 빗어내리며 이마에 입맞추고 소파에서 내려가 거실을 벗어났다. 아마 침대로 갔을 것이다.
스팍은 완전히 만족해 늘어져 지친 채 소파에 웅크렸다. 위층으로 올라가 짐을 꼭 끌어안고 싶었다. 스팍도 ‘사랑한다’고 대답해 줬어야 했다. 하지만 짐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말을 했어야 했다.
짐의 곁에 있을 수가 없었다.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말했어야 했다.
짐을 잃는다고 생각하면 온 마음이 부서졌다. 짐의 곁에서는 괴물이 된 기분이었다. 짐을 생각하면 스스로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눈가가 눈물로 촉촉했다. 빠져나올 수도 없는 승리하지 못하는 시나리오였다. 스팍은 짐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이제는 알고 있었고 인정도 하겠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스팍은 짐의 이불을 덮고 소파 위에 웅크렸다. 스팍은 온통 짐의 냄새로 가득했다.
그날 밤 스팍은 한숨도 잘 수 없었다.
– – –
고작 이틀이 지났다. 커크 제독에게 연락이 왔다. 짐은 사관학교에 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걸 챙겼고 방도 예약했다. 스팍도 짐을 도와주었다. 스팍이 짐의 곁에 있는 모든 순간은 고문과도 같았지만 헤어지는 건 더했다. 스팍이 익숙해져야 할 일이었다. 어느 쪽이든.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건 알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스팍이 문을 열자마자 제독이 두 팔을 벌려 스팍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스팍은 놀라 끙 소리를 냈지만 가만히 있었다. 제독이 웃으며 몸을 뗐다. 스팍은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제독은 스팍에게 한없이 고마워하는 것 같았고 이틀 전 자신의 아들이 스팍에게 수음을 해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짐도 초인종 소리를 들었는지 계단을 뛰어내려와 스팍을 지나 엄마 품에 안겨 소리쳤다.
“엄마!”
“짐!”
제독은 짐을 꼭 끌어안으며 울려고 했다. 그러더니 정말 울기 시작해서는 나중에는 아주 흐느꼈다.
“너무 오랜만이다! 어머, 이렇게 크다니! 엄마보다 더 크네! 어우, 짐. 그동안 엄마가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요. 계속 연락은 했잖아요. 심지어 생일을 그냥 지나친 적도 없으면서.”
짐이 몸을 떼며 웃자 제독이 짐의 볼에 입을 맞추며 다시 끌어안았다. 스팍은 마치 훼방꾼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제독은 짐의 어깨 너머로 감사 인사를 했다.
“스팍, 정말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난 다음 주에 사관학교로 가요.”
짐이 칭얼대며 제독의 품에서 벗어나 끼어들었다.
“엄마가 올 때마다 이러면 싫다니까요.”
“어머, 장하기도 하지!”
제독이 활짝 웃었다. 제독이 짐의 머리카락을 헤집었고 짐은 웃으며 장난스럽게 피했다.
“당연히 주말마다 와야 한다? 꼬박꼬박 집으로 와야 해.”
“꼬박꼬박 올게요.”
짐이 약속했다.
“스팍도요.”
스팍이 고개를 돌려 짐을 쳐다보았다. 커크 제독이 행복하게 웃었다.
“넌 어디 있을 거니, 스팍? 나랑 계속 같이 살아도 돼!”
“사관학교에서 나랑 같은 방 썼으면 좋겠는데.”
짐의 말에 커크 제독이 대답했다.
“그럼 좋지.”
서로 다른 입장인 걸 생각하면 부적절하다는 걸 알고 있을 제독의 말에 스팍은 약간 놀랐다.
스팍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시내에 작은 아파트를 구했습니다. 짐과 마찬가지로 월말에 이사를 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는 머물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하지. 더 있으면 좋은데.”
제독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너희를 보러 샌프란시스코에 자주 놀러갈게. 그래도 가족들이 모일 집이니까 이 집은 계속 관리해야지. 언젠가 우리 애들이 날 보러 올지도 모르잖아.”
제독이 윙크를 하자 짐이 웃었다. 스팍은 그럴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지만 입을 다물고 예의를 차렸다.
제독이 몸을 굽혀 가방을 들자 스팍과 짐이 빠르게 받아들었다.
“그럼, 진작 저녁 식사나 할걸. 7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야 하잖아. 물론 컴퓨터로 다 들었지만 너희 얼굴을 보면서 전부 다시 듣고 싶어.”
제독은 둘을 거실로 몰아넣고는 주방으로 향했다.